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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로 보는 성경

밀 베는 농부인 줄 알았습니다

그림 오른쪽 아래 구석에 군복이 벗겨져 있습니다. 화가는 편한 새 농기구를 지우고 죽음을 닮은 낡은 낫으로 고쳐 그렸습니다. 시편 126편도 같은 자리에 서 있습니다.

2026년 7월 27일·9분 읽기·SOLSUNG
밀밭에서 낫으로 밀을 베는 남자를 뒤에서 그린 그림

달력을 넘기다 그림 한 점에 눈이 멎었습니다. 넓은 밀밭에 남자가 하나, 우리를 등지고 서 있습니다. 밀짚모자를 쓰고 허리를 숙인 채 밀을 베고 있습니다. 추수하는 농부구나 하고 넘기려는데, 오른쪽 아래 구석에 뭔가가 놓여 있었습니다.

넓은 밀밭에서 등을 돌린 채 낫으로 밀을 베고 있는 흰 셔츠 차림의 남자
윈슬로 호머, 〈The Veteran in a New Field〉, 1865,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풀밭에 웃옷 하나가 벗겨져 있습니다

그림 오른쪽 아래를 보면 풀밭에 웃옷과 물통이 아무렇게나 놓여 있습니다. 어두워서 잘 안 보이지만 놋쇠 단추 두 개가 반짝입니다. 북군 군복 상의와 병사들이 쓰던 수통입니다.

이 사람은 농부가 아닙니다. 전쟁에서 막 돌아온 사람입니다. 군복을 벗어 던지고 그 자리에서 밀을 베고 있습니다.

그림이 그려진 해는 1865년입니다. 4월 9일에 남부군 리 장군이 항복했고, 닷새 뒤 링컨 대통령이 총에 맞아 죽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대통령을 잃은 그해에, 화가는 밀밭에 선 남자 하나를 그렸습니다.

화가도 그 전쟁에 있었습니다

그린 사람은 윈슬로 호머입니다. 스물다섯이던 1861년 가을에 잡지 《하퍼스 위클리》의 종군 화가로 전선에 갔습니다. 사진기가 아직 전장을 따라다니기 어려웠던 때라, 신문과 잡지는 화가를 보내 그림으로 전황을 실어 날랐습니다.

그가 전선에서 그린 건 전투 장면이 아니었습니다. 병사들이 추수감사절을 보내고, 공을 차고, 막사에서 밥 먹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그는 전쟁보다 사람을 보던 화가였습니다.

이 낫은 원래 다른 낫이었습니다

그림 속 남자가 쥔 낫을 보면 날이 하나뿐인 낡은 낫입니다. 그런데 호머가 처음 그린 건 이게 아니었습니다.

원래는 훨씬 정교한 낫을 그렸습니다. 벤 곡식을 가지런히 모아주는 틀이 달려서 일이 한결 수월한, 당시 농부들이 쓰던 개량 도구였습니다. 호머는 그걸 지우고 낡은 외날 낫으로 고쳐 그렸습니다.

이 사실은 백몇십 년이 지나는 동안 물감이 조금씩 투명해지면서 드러났습니다. 지금도 캔버스 왼쪽을 보면 처음 그렸던 낫의 윤곽이 희미하게 남아 있습니다.

날이 하나뿐인 긴 낫은 서양에서 죽음을 사람 모습으로 그릴 때 그 손에 들려 있던 도구입니다. 그래서 미술관도, 이 그림을 오래 봐 온 사람들도 여기서 죽음의 그림자를 읽어 왔습니다.

호머가 정말 그 뜻으로 바꿨는지는 본인만 알겠지만, 더 편한 도구를 일부러 지웠다는 건 분명합니다. 총을 놓고 낫을 든 사람, 사람을 베던 자리에서 곡식을 베는 사람.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이 장면을 두고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든다"는 이사야서 구절을 함께 언급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호머는 그 회복의 한복판에 죽음을 닮은 도구를 남겨 뒀습니다.

돌아온 사람들이 부른 노래

달력에서 이 그림 아래 붙어 있던 구절은 시편 126편이었습니다. 처음엔 추수하는 그림이니 추수 이야기를 붙였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림을 알고 나서 다시 읽으니, 이 구절이 하필 여기 붙은 이유가 따로 있는 것 같았습니다.

시편은 성경 안에 있는 노래 모음집입니다. 그중 120편부터 134편까지에는 「성전에 올라가는 순례자의 노래」라는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으로 걸어 올라가면서 부르던 노래들입니다.

126편은 첫 줄부터 돌아온 사람들의 노래입니다. 주님께서 포로를 돌려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을 꾸는 사람들 같았다고, 입에 웃음이 가득 찼다고 시작합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까지 저들에게 큰 일이 일어났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여기까지 읽으면 다 끝난 이야기 같습니다. 그런데 4절에서 갑자기 기도가 나옵니다.

주님, 네겝의 시내들에 다시 물이 흐르듯이 포로로 잡혀간 자들을 돌려 보내 주십시오.

시편 126:4

아직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이 남아 있었던 겁니다. 노래하는 사람은 이미 돌아왔지만, 그가 아는 누군가는 아직 저쪽에 있습니다. 네겝은 물이 마른 땅이라 시내에 물이 흐르려면 비가 와야 하는데, 그 비를 기다리는 심정으로 기도합니다.

그 유명한 구절은 바로 이 기도 다음에 옵니다. 다 이룬 사람의 승리 선언이 아니라, 절반만 돌아온 자리에서 나온 말입니다.

밀밭에 선 남자도 같은 자리에 서 있습니다. 전쟁은 끝났고 그는 살아 돌아왔지만, 손에 든 건 죽음을 닮은 낫이고 발밑엔 베어 넘어진 밀이 쌓여 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사람은 기쁨으로 거둔다.

시편 126:5

그림 한 점씩, 이렇게 만나 보겠습니다. 오래된 그림이 익숙한 구절을 낯설게 만들어 줄 때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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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근거

작품 정보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품 자료를 따랐습니다(윈슬로 호머, 〈The Veteran in a New Field〉, 1865, 소장번호 67.187.131). 이 작품은 퍼블릭 도메인입니다. 카드에 쓴 사진 두 장도 퍼블릭 도메인입니다. 호머의 초상은 나폴레옹 새러니가 1880년에 찍었고(보든 칼리지 미술관 소장), 링컨의 초상은 알렉산더 가드너가 1865년 2월 5일에 찍은 것으로 미국 의회도서관이 소장하고 있습니다. 둘 다 1931년 이전 발행이라 저작권이 만료됐습니다. 호머의 종군 이력은 매사추세츠 역사협회와 하버드 미술관 전시 자료를 참고했습니다. 성경은 새번역을 인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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