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 말해주는 기다림
답이 늦을 때
요즘 주변을 보면 무언가 결과를 기다리는 분이 유독 많은 것 같아요. 입시 발표, 취업 소식, 검사 결과, 오래 드린 기도의 응답까지요.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면,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죠. "내 믿음이 부족해서 이렇게 안 되나." 그런데 성경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오래 기다렸어요. 성경이 기다림을 어떻게 다루는지, 곁에 둘 다섯 장면을 함께 적어 볼게요.
기다림은 믿음이 부족해서가 아니에요
성경을 펼치면 기다림 없이 곧장 응답받은 사람을 찾기가 오히려 어려워요. 아브라함은 아들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받고, 그 아들 이삭을 품에 안기까지 스물다섯 해를 기다렸어요. 요셉은 형들에게 팔려 간 뒤 오랜 종살이와 억울한 감옥을 지나서야 쓰임 받았고요.
이 사람들이 믿음이 약해서 그렇게 오래 걸린 걸까요? 성경은 정반대로 그려요.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으로 불리고, 요셉은 그 긴 시간을 지나며 오히려 단단해졌어요. 기다림이 길어진 게 벌이나 실패의 증거가 아니었던 거예요.
기다림에는 '때'가 있어요
기다림이 막막한 건, 언제 끝날지 모르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성경은 그 막막함에 한 가지를 먼저 말해 줘요. 모든 일에는 정해진 때가 있다는 거예요.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마다 알맞은 때가 있다.
내 계획표대로라면 지금쯤 됐어야 하는데, 하고 조급해질 때가 있죠. 하지만 씨앗을 심고 다음 날 열매를 딸 수 없듯, 어떤 일은 익는 데 시간이 걸려요. 지금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것 같은 그 시간이, 사실은 때를 향해 가는 중일 수 있어요.
그래서 예언자 하박국은 "늦다"와 "없다"를 나눠서 봐요.
이 묵시는, 정한 때가 되어야 이루어진다. 끝이 곧 온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것은 공연한 말이 아니니, 비록 더디더라도 그 때를 기다려라. 반드시 오고야 만다. 늦어지지 않을 것이다.
"더디더라도 반드시 오고야 만다." 더딘 것과 오지 않는 것은 달라요. 응답이 늦어 보일 때 우리는 종종 "이건 안 되는 거야"라고 결론을 내려 버리지만, 성경은 늦어 보이는 시간에도 약속이 오는 중이라고 말해요.
기다리다 지칠 때
그래도 문제는 남죠. 기다림이 길어지면 마음보다 몸이 먼저 지쳐요. 성경은 이 지침을 모른 척하지 않아요. 오히려 지친 사람에게 힘의 출처를 알려 줘요.
오직 주님을 소망으로 삼는 사람은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를 치며 솟아오르듯 올라갈 것이요, 뛰어도 지치지 않으며, 걸어도 피곤하지 않을 것이다.
이 구절이 말하는 힘은 이를 악물고 짜내는 힘이 아니에요. "주님을 소망으로 삼는 사람"이 얻는, 바깥에서 새로 채워지는 힘이에요. 기다림을 혼자 버티는 근성으로 그리지 않고, 주님께 기대어 힘을 다시 얻는 시간으로 그리는 거예요.
그냥 참는 게 아니라, 바라며 기다리는 것
여기서 한 가지를 구분하면 좋아요. 성경이 말하는 기다림은 될 대로 되라며 손을 놓는 체념이 아니에요.
그러나 우리가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면, 참으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면"이라는 조건이 눈에 걸리죠. 아직 안 보이는 게 기다림의 당연한 조건이에요. 다 보이면 그건 기다림이 아니니까요. 그러니 지금 아무것도 안 보인다고 해서 실패한 게 아니에요. 오히려 바라는 마음이 있기에 기다림도 있는 거예요. 기다림은 포기의 반대말인 셈이죠.
그리고 성경은 이 기다림을 웅크린 자세로 그리지 않아요.
너는 주님을 기다려라. 강하고 담대하게 주님을 기다려라.
"강하고 담대하게" 기다리라니, 조금 낯선 조합이죠. 우리는 기다림을 수동적인 일로 여기지만, 다윗은 기다림에 강함과 담대함을 붙여요. 반드시 오리라 믿기에, 주저앉지 않고 고개를 든 채 기다리는 거예요.
기다린 사람에게
그렇게 기다린 끝은 어떨까요. 다윗은 자기가 지나온 자리를 이렇게 돌아봐요.
내가 간절히 주님을 기다렸더니, 주님께서 나를 굽어보시고, 나의 울부짖음을 들어 주셨네.
"간절히 기다렸더니"로 시작해 "들어 주셨네"로 끝나요. 기다림과 응답이 한 문장 안에 나란히 있어요. 물론 우리가 원하는 방식, 원하는 시간표 그대로 응답이 오지 않을 때도 있어요. 그럼에도 성경은 기다림을 향한 하나님의 태도를 이렇게 정리해요.
주님께서는,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이나 주님을 찾는 사람에게 복을 주신다.
기다리는 사람은 방치되지 않아요. 응답의 시간표는 우리가 정하지 못해도, 기다리는 그 사람을 향한 마음은 성경 안에서 한결같아요.
- 때가 있음 — 모든 일에는 알맞은 때가 있다 (전도서 3:1)
- 더딤과 없음은 다름 — 더디더라도 반드시 온다 (하박국 2:3)
- 새 힘 — 주님을 소망 삼으면 지치지 않는다 (이사야 40:31)
- 바라며 기다림 —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며 참음 (로마서 8:25)
- 응답하심 — 기다린 사람의 울부짖음을 들으심 (시편 40:1)
"이만큼 기다렸는데 왜 아무 일도 없을까" 하는 마음이 들 때가 있죠. 그 마음을 억누르지 말고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꺼내 놓는 것부터가 기다림의 한 걸음이에요. 다윗도 "간절히 기다렸다"고 울부짖음을 숨기지 않았어요. 다만 기다림이 일상을 무너뜨릴 만큼 무겁다면, 믿을 만한 사람이나 전문가에게 마음을 털어놓는 게 믿음이 약한 게 아니라 나를 돌보는 일이에요.
오늘 하루의 기다림
기다림을 단번에 끝낼 방법은 성경에도 없어요. 대신 성경은 기다리는 오늘을 어떻게 보낼지를 알려 줘요. 오늘은 위의 다섯 장면 중 마음에 가장 닿는 하나를 곁에 두는 것부터면 충분해요. 성경이 말해주는 실패에서처럼, 답이 늦는 자리에서도 한 구절씩 곁에 두며 천천히 가는 거예요.
이런 말씀을 하루 한 구절씩 곁에 두고 싶다면, 소테리아는 하루 3분, 부담 없이 말씀 안에 머물 수 있게 도와요.
하루 3분, 말씀 한 구절 곁에 두기
소테리아에서 묵상 시작하기자주 묻는 질문
- 기다림에 대해 성경은 뭐라고 말하나요?
- 성경은 기다림을 믿음이 부족한 상태로 보지 않아요. 아브라함은 약속을 스물다섯 해 기다렸고, 요셉은 오랜 종살이와 감옥을 지난 뒤에야 쓰임 받았어요. 전도서 3:1은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다'고 하고, 하박국 2:3은 '비록 더디더라도 반드시 오고야 만다'고 해요. 늦어 보이는 시간에도 약속은 오는 중이라는 게 성경의 시선이에요.
- 기다리다 지칠 때 힘이 되는 구절이 있을까요?
- 이사야 40:31은 '주님을 소망으로 삼는 사람은 새 힘을 얻으리니, 뛰어도 지치지 않으며 걸어도 피곤하지 않을 것'이라고 해요. 시편 27:14은 '너는 주님을 기다려라. 강하고 담대하게 주님을 기다려라'고 하고요. 기다림을 혼자 버티는 힘이 아니라, 주님께 기대어 새 힘을 얻는 시간으로 그려요.
- 아무리 기다려도 응답이 없는 것 같을 때는요?
- 로마서 8:25은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면 참으면서 기다려야 한다'고 해요. 아직 안 보이는 게 기다림의 자연스러운 조건인 거예요. 다만 기다림이 일상을 무너뜨릴 만큼 무겁다면, 믿을 만한 사람이나 전문가에게 마음을 털어놓는 게 믿음이 약한 게 아니라 나를 돌보는 일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