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자들은 도둑이 아닙니다
세 여자가 남의 밭에서 떨어진 이삭을 줍습니다. 1857년 파리는 이 그림을 무서워했습니다. 그런데 이 일에는 규정이 있었고, 그림 오른쪽 끝에 그 규정을 지키는 사람이 서 있습니다.
허리를 굽힌 세 여자를 한참 봤습니다. 왼쪽 둘은 몸을 거의 접다시피 하고 땅을 훑고, 오른쪽 한 사람은 이삭 몇 줄기를 쥔 채 다음 자리를 찾습니다. 조용하고 단정한 농촌 그림입니다. 그런데 이들 뒤로 눈이 가는 순간 그림이 달라 보였습니다.

이 밭은 이 사람들의 밭이 아닙니다
지평선 쪽을 보면 낟가리가 산처럼 쌓여 있고 곡식단과 수레, 일꾼들이 분주합니다. 그해 농사가 잘된 겁니다. 그런데 그 풍요는 앞쪽 세 사람의 몫이 아닙니다. 이들은 추수가 다 끝난 자리에 들어와 땅에 떨어진 낟알을 하나씩 집습니다. 온종일 허리를 굽혀야 한 줌이 모입니다.
오른쪽 끝을 보면 말 위에 사람이 하나 있습니다. 오르세 미술관은 이 사람을 농장 일을 관리하는 감독관으로 봅니다. 이삭을 줍는 데에도 지켜야 할 규정이 있었고, 그가 그것을 살피는 자리에 있었습니다.
1857년 파리는 이 그림을 무서워했습니다
이 그림이 그해 살롱에 걸렸을 때 파리의 반응은 차가웠습니다. 한 비평가는 세 사람을 두고 「가난의 세 여신」이라며 못생겼다고 썼습니다. 다른 사람은 이 그림에서 1793년의 단두대를 떠올린다고 했습니다. 프랑스 혁명이 왕과 귀족을 처형하던 해입니다.
1848년 혁명을 막 지나온 도시였습니다. 여유 있는 계층은 이 그림에서 농촌 풍경 대신 아래에서 올라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프랑스가 누구의 노동 위에 서 있는지 굳이 보여 주는 그림이었으니까요.
살롱이 끝나고 밀레는 이 그림을 팔았습니다. 4천 프랑을 불렀다가 값을 깎아 3천 프랑에 넘겼습니다. 돈이 급했습니다.
그린 사람도 농가에서 자랐습니다
장 프랑수아 밀레는 1814년 노르망디 그뤼시의 농가에서 여덟 남매 중 하나로 태어났습니다. 스무 살 무렵까지 땅에서 일하다가 그림을 배웠고, 서른다섯에는 스스로를 실패한 화가로 여기며 파리를 떠났습니다. 그가 자리 잡은 곳이 퐁텐블로 숲가의 작은 마을 바르비종입니다.
거기서 그는 이삭 줍는 사람들이라는 한 가지 장면에 10년을 썼습니다. 습작을 거듭한 끝에 나온 것이 이 그림입니다.
32년 뒤인 1889년, 이 그림은 경매에서 30만 프랑에 팔렸습니다. 밀레가 받았던 값의 백 배입니다. 그 무렵 프랑스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 5프랑 남짓이었으니, 삼백 년을 일해야 만질 수 있는 돈이었습니다. 오늘 돈으로 치면 백억 원이 넘습니다. 샴페인 회사를 이끌던 포므리 부인이 사들였고, 오르세 미술관은 이 그림이 이듬해 그의 기증으로 들어왔다고 기록합니다. 밀레는 그 광경을 보지 못하고 1875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일에는 이름이 있었습니다
떨어진 것을 줍는 이 일을 이삭줍기라고 불렀습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오래전부터 열려 있던 자리였고, 밭 주인의 인심에 달린 일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규정이 있었고, 말 탄 감독관이 그것을 살폈습니다.
성경에도 이 자리에 선 사람이 있습니다. 룻기에 나오는 모압 여자 룻입니다. 남편을 잃고 시어머니와 둘만 남은 뒤, 룻은 보리밭에 이삭을 주우러 나갑니다. 낯선 나라에서 그가 당장 먹을 것을 구할 수 있었던 방법이 그것이었습니다.
"밭에 나가 볼까 합니다. 혹시 나에게 잘 대하여 주는 사람을 만나면, 그를 따라다니면서 떨어진 이삭을 주울까 합니다."
룻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 곳에만 적힌 법도 아닙니다. 신명기에도 같은 명령이 되풀이됩니다. 곡식 한 묶음을 잊고 왔거든 그것을 가지러 되돌아가지 말라고요.
그 법의 원문을 읽어 보면 명령이 향하는 쪽이 뜻밖입니다. 이 말을 듣는 사람은 이삭을 줍는 쪽이 아닙니다.
밭에서 난 곡식을 거두어들일 때에는, 밭 구석구석까지 다 거두어들여서는 안 된다. 거두어들인 다음에, 떨어진 이삭을 주워서도 안 된다. 포도를 딸 때에도 모조리 따서는 안 된다. 포도밭에 떨어진 포도도 주워서는 안 된다. 가난한 사람들과 나그네 신세인 외국 사람들이 줍게, 그것들을 남겨 두어야 한다. 내가 주 너희의 하나님이다.
그림 한 점이 오래된 법조문 하나를 다시 읽게 했습니다. 오래된 그림이 익숙한 구절을 낯설게 만들어 줄 때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 앞에 잠시
묵상 시작하기작품 정보와 그림 해설은 오르세 미술관 소장품 자료를 따랐습니다(장 프랑수아 밀레, 〈Des glaneuses〉, 1857, 캔버스에 유채). 오른쪽 끝 말 탄 인물을 농장 관리인으로 보는 것, 뒤쪽 배경의 낟가리와 수레, 1890년 포므리 부인의 기증으로 소장품이 되었다는 사실은 모두 미술관이 밝힌 내용입니다. 이 작품은 퍼블릭 도메인입니다. 1857년 살롱의 비평과 3천 프랑 판매, 1889년 30만 프랑 낙찰은 이 그림을 다룬 미술사 자료에 공통으로 기록된 내용이며, 30만 프랑을 오늘 값으로 옮긴 것은 어림한 값입니다. 당시 프랑스가 금본위였을 때의 금 함량(1프랑 = 순금 0.29그램)으로 계산한 값과, 1890년대 프랑스 노동자의 하루 품삯 4.85프랑을 기준으로 계산한 값이 모두 백억 원대로 나옵니다. 밀레의 생애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연보를 참고했습니다. 카드에 쓴 밀레의 사진은 나다르가 촬영한 것으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으며 퍼블릭 도메인입니다. 성경은 새번역을 인용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