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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로 보는 성경

두 사람은 손을 잡지 않았습니다

1882년 전시에 걸린 뒤 이 그림은 112년 동안 사라졌습니다. 남은 것은 그림을 놀리려고 그린 신문 만평 한 컷이었습니다. 그린 사람은 동료들을 먼저 걷게 한 화가였습니다.

2026년 7월 28일·9분 읽기·SOLSUNG
여름 시골길을 나란히 걸어 올라가는 남자와 붉은 양산을 든 여자의 뒷모습

지난번 그 달력의 7월을 다시 폈습니다. 여름 시골길이 완만하게 위로 뻗어 있고, 남자와 여자가 우리를 등지고 그 길을 오릅니다. 남자는 노란 밀짚모자를 썼고 여자는 붉은 양산을 들었습니다. 다정한 산책 그림이구나 싶었는데, 두 사람 사이가 생각보다 멀었습니다.

여름 시골길을 나란히 걸어 올라가는 남자와 붉은 양산을 든 여자의 뒷모습
귀스타브 카유보트, 〈Chemin montant〉, 1881, 포츠담 바르베리니 미술관 소장

손이 닿지 않는 거리입니다

팔짱을 끼지도, 손을 잡지도 않았습니다. 어깨 하나가 더 들어갈 만큼 떨어져서 각자 자기 앞을 봅니다. 말을 주고받는 중인지도 알 수 없습니다. 뒷모습이라 표정이 없으니까요.

그런데도 두 사람은 같은 속도로 같은 오르막을 오릅니다. 발밑의 길은 하나뿐이고, 그 길은 화면 밖까지 계속 올라갑니다.

이 그림은 112년 동안 없던 그림입니다

1882년 봄 파리에서 일곱 번째 인상주의 전시가 열렸을 때 이 그림이 걸렸습니다. 큰 화면과 붓질이 눈에 띈다는 평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이 그림은 사라졌습니다.

이후 백 년 넘게 실물을 본 사람이 없었습니다. 개인의 집에서 집으로 옮겨 다녔고, 미술사학자들은 전시 목록과 당시 비평문으로 이런 그림이 있었다는 사실만 알았습니다. 남아 있는 유일한 모습은 《르 샤리바리》라는 파리 풍자 신문에 실린 만평 한 컷이었습니다. 놀리려고 그린 만평이 그 그림의 유일한 기록으로 남은 겁니다.

1994년 파리 그랑팔레에서 카유보트 회고전이 열렸을 때 이 그림이 다시 나타났습니다. 112년 만이었습니다.

그린 사람은 남을 먼저 걷게 한 화가였습니다

귀스타브 카유보트는 인상주의 화가들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돈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그 돈을 자기 그림에 쓰지 않았습니다.

1877년 인상주의 전시를 자기 돈으로 열었고, 여섯 해 동안 전시의 조직과 자금을 도맡았습니다. 동료들이 그림을 걸 자리를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모네와 르누아르, 피사로, 세잔, 드가, 시슬레, 모리조의 그림도 일흔 점 넘게 사들였습니다. 그것도 팔릴 것 같지 않은 그림을 골라서 샀습니다.

스물여덟이던 1876년에는 유언장을 썼습니다. 자기가 모은 그림을 프랑스에 남긴다는 내용이었습니다. 1894년 마흔다섯에 세상을 떠났고, 3년 뒤 뤽상부르 미술관에 「카유보트 방」이 열렸습니다. 인상주의 그림이 미술관에 그렇게 한꺼번에 걸린 건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그가 사 준 그림들은 그렇게 미술관에 들어갔습니다. 정작 자기 그림 한 점은 그 사이 112년을 사라져 있었습니다.

앞서 걷게 해 주고 자기는 뒤에 남는 것. 그것도 함께 가는 걸까요.

혼자여서 헛되다고 합니다

전도서는 잘 사는 법을 가르치는 책이 아닙니다. 해 아래서 헛된 것들을 하나씩 세어 보는 책입니다. 쌓아 둔 재산도 헛되고, 남긴 이름도 헛되고, 쉬지 않은 수고도 헛되다고 합니다.

그 목록 가운데 이런 사람이 있습니다.

한 남자가 있다. 자식도 형제도 없이 혼자 산다. 그러나 그는 쉬지도 않고 일만 하며 산다. 그렇게 해서 모은 재산도 그의 눈에는 차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는 가끔, "어찌하여 나는 즐기지도 못하고 사는가? 도대체 내가 누구 때문에 이 수고를 하는가?" 하고 말하니, 그의 수고도 헛되고, 부질없는 일이다.

전도서 4:8

여기서 헛되다고 지목된 것은 게으름이 아닙니다. 쉬지 않고 일하는 사람인데도 헛되다고 합니다. 그가 혼자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에게 없는 것은 재산이 아닙니다. "도대체 내가 누구 때문에 이 수고를 하는가." 이 물음을 대신 받아 줄 사람이 없어서,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하다 끝납니다.

카유보트는 그 반대편에 서 있던 사람입니다. 자기 그림은 뒤로 미루고 남의 그림 값을 치렀고, 그렇게 산 그림들이 미술관에 걸리는 것을 보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래도 그의 이름은 그 방에 남았습니다.

다시 그림입니다. 두 사람은 서로 기대지도, 끌어 주지도 않습니다. 나란히 있다는 것 말고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그림입니다. 그런데 전도서가 낫다고 하는 '둘'도 그 이상은 아닙니다.

혼자보다는 둘이 더 낫다. 두 사람이 함께 일할 때에,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넘어지면, 다른 한 사람이 자기의 동무를 일으켜 줄 수 있다. 그러나 혼자 가다가 넘어지면, 딱하게도, 일으켜 줄 사람이 없다.

전도서 4:9-10

두 번째 그림입니다. 오래된 그림이 익숙한 구절을 낯설게 만들어 줄 때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 앞에 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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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근거

작품은 귀스타브 카유보트의 〈Chemin montant〉(1881, 캔버스에 유채, 100.2×125.3cm)로 포츠담 바르베리니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으며 퍼블릭 도메인입니다. 1882년 일곱 번째 인상주의 전시 출품, 드라네가 《르 샤리바리》에 실은 만평, 개인 소장으로 옮겨 다니다 1994년 파리 그랑팔레 회고전에서 다시 공개된 일, 2019년 크리스티 런던 경매는 카유보트 연구 자료와 경매 기록에 남아 있는 내용입니다. 그가 인상주의 전시를 자기 돈으로 조직하고 동료들의 작품 일흔 점 넘게를 사 모아 나라에 남긴 일은 오르세 미술관의 「카유보트 유증」 전시 소개를 비롯한 여러 미술사 자료가 함께 전합니다. 카드에 쓴 카유보트의 사진은 1878년경 촬영본으로 퍼블릭 도메인입니다. 성경은 새번역을 인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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