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내지 말라고 배웠는데 참기만 하면 생기는 일
화를 꾹 참고 넘겼는데 집에 오면 더 답답한 날이 있어요. 눌린 건 표정이고 생각은 그대로 남기 때문이에요. 입을 닫겠다고 결심했다가 더 괴로워진 다윗이 그다음에 한 일을 함께 읽어요.
화를 거의 내지 않는 분이 주변에 한 명쯤 있잖아요. 제 주변에도 한 분이 그래요. 무슨 일이 있어도 표정이 거의 바뀌지 않으시더라고요. 그런데 얼마 전에 웃으면서 "저 사실 하나도 안 괜찮아요" 하시는 걸 듣고 좀 놀랐어요.
교회에서 화에 대해 배우는 건 거의 하나예요. 참으라고요.
그래서 화가 날 때 우리가 하는 건 대개 비슷해요. 표정을 바꾸지 않아요. 목소리를 낮춰요. 그 자리를 웃으며 넘겨요. 그리고 집에 와서 그 장면을 몇 번이고 다시 떠올려요.
그러고 나면 이런 생각이 들어요. "이 정도도 넘기지 못하면 내가 믿음이 없는 건가."
이 글은 그 생각을 들여다보려고 해요. 먼저 참을 때 실제로 무엇이 눌리고 무엇이 남는지 보고, 그럼 터뜨리는 게 나은지 확인하고, 입을 닫겠다고 결심했다가 더 괴로워진 다윗이 그다음에 한 일을 볼게요.
참았는데 왜 집에 오면 더 답답할까요
눌린 것과 남은 것이 서로 달라요
참는 게 소용없는 건 아니에요
좀 뜻밖의 이야기부터 할게요. 화난 표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 그거 그 순간에는 꽤 효과가 있어요.
감정을 다루는 방법을 실험으로 잰 연구를 모아 본 조사가 있어요. 웹·마일스·시어런이 2012년에 비교 306건을 모았는데, 거기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누르는 방법은 효과가 있는 방향으로 나왔어요.
그래서 우리가 계속 이걸 써요. 소용없는 방법을 평생 쓰지는 않잖아요. 그 자리를 넘기는 데는 정말 도움이 돼요.
그런데 집에 오면 더 답답하죠. 같은 조사 안에 그 답이 있어요.
누른 건 표정이고, 남은 건 생각이에요
연구자들은 무엇을 누르는지에 따라 셋으로 나눠서 따로 쟀어요. 결과가 서로 달랐어요.
- 겉으로 드러나는 표현을 누르기 — 효과가 있는 방향이었어요.
- 감정을 느끼는 것 자체를 누르기 — 달라지는 게 거의 없었어요.
- 그 일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누르기 — 도움이 되지 않았어요. 오히려 살짝 반대로 나왔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그 자리에서 누르는 데 성공한 건 표정이에요. 정말 없애고 싶었던 건 그 느낌과 그 생각인데, 뒤쪽 둘은 그대로 남아요.
집에 와서 그 장면을 다시 떠올리는 게 그래서예요. 표정은 잘 눌렀는데, 생각은 한 번도 눌린 적이 없어요.
그것만 쓰면 생기는 일
평소에 습관처럼 누르는 사람들을 따로 본 조사도 있어요. 그로스와 존이 2003년에 다섯 번에 걸쳐 쟀는데, 평소에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은 주변에서 받는 도움이 적었어요. 모든 종류에서 적었고, 그중 마음을 받아 주는 도움에서 차이가 가장 컸어요.
왜 그런지도 같은 조사에서 한 가지 나왔어요. 누르는 사람들이 느끼는 괴로움은, 누르는 것 자체보다 "지금 내 모습이 나 같지 않다"는 걸 자기가 알아차릴 때 커졌어요. 그 느낌을 뺀 채로 다시 계산해 보니 괴로움의 차이가 거의 사라졌어요.
웃으면서 괜찮다고 말할 때 마음이 불편한 게 그래서예요. 상대를 속여서라기보다, 내가 지금 나 같지 않다는 걸 내가 알고 있어서예요.
한 가지가 더 있어요. 리처즈와 그로스가 2000년에 세 번에 걸쳐 쟀는데, 감정을 드러내지 않게 누른 사람들은 그때 들은 말을 잘 기억하지 못했어요. 말로 된 것만 그랬고 그림이나 장면 기억은 멀쩡했어요. 꾹 참고 앉아 있던 회의에서 무슨 말이 오갔는지 잘 떠오르지 않는다면 그래서예요.
2003년 조사는 한 시점에 설문으로 같이 잰 거예요. 연구자들도 "이 상관 연구들은 인과를 다루지 않는다"고 분명히 적어 뒀어요. 누르는 사람이 혼자가 되는 건지, 혼자인 사람이 더 누르는 건지는 이 숫자로는 알 수 없어요. 그리고 분노 하나만 떼서 잰 연구에서는 오히려 반대 방향이 나왔어요(설리번·칸, 2020).
그럼 터뜨리면 되나요?
그건 더 분명히 아니에요
"참으면 터진다"는 말을 들어 봤을 거예요. 그러니 차라리 시원하게 쏟아내는 게 낫다고요.
이건 재 봤어요. 부시먼이 2002년에 600명에게 자기 글을 혹평하는 쪽지를 받게 했어요. 그리고 셋으로 나눴어요. 혹평한 사람을 생각하면서 샌드백을 친 사람들, 체력 운동이라고 생각하며 친 사람들, 2분 동안 그냥 앉아 있던 사람들이에요.
그냥 앉아 있던 사람들이 가장 나았어요. 상대를 생각하며 때린 사람들은 화도 더 났고, 그다음에 상대에게 더 세게 나갔어요.
연구에서 공격의 크기는 상대에게 들려주는 소음의 세기와 길이로 쟀어요. 실험실에서 공격성을 대신 재는 방법이에요. 한 번 한 실험이고 차이의 크기도 작았어요. 그래도 방향은 분명했어요. 터뜨린다고 화가 가라앉지는 않았어요.
그러니까 고를 수 있는 게 둘뿐이면 답이 없어요. 참으면 생각이 남고, 터뜨리면 화가 더 커져요.
다윗은 세 번째 방법을 썼어요.
성경은 이 마음을 먼저 알고 있었어요
입을 닫기로 결심했던 사람이 그다음에 한 일
성경도 다 쏟아붓는 건 말려요
먼저 한 가지는 분명히 해 둘게요. 화를 사람에게 그대로 다 퍼붓는 건 성경도 말려요.
어리석은 자는 자기의 노를 다 드러내어도 지혜로운 자는 그것을 억제하느니라
「노」는 화를 뜻하는 옛말이고, 「다 드러내어도」는 있는 대로 전부 쏟아낸다는 말이에요.
교회에서 자란 사람은 보통 여기까지 배워요. 그런데 성경에는 화난 마음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말한 사람이 아주 많아요. 둘이 어떻게 같이 있을 수 있을까요.
입에 재갈을 물리겠다고 결심한 사람
다윗은 아예 결심을 해요. 화나게 하는 사람 앞에서 입을 열지 않겠다고요.
내가 말하기를 나의 행위를 조심하여 내 혀로 범죄하지 아니하리니 악인이 내 앞에 있을 때에 내가 내 입에 재갈을 먹이리라 하였도다
「나의 행위를 조심하여」는 내가 하는 일을 잘 살피겠다는 말이고, 「내 혀로 범죄하지 아니하리니」는 말로 죄를 짓지 않겠다는 뜻이에요. 재갈은 말 입에 물리는 쇠막대예요. 그걸 내 입에 물리겠다는 뜻이에요.
괜찮은 결심이에요. 많은 사람이 오늘도 이 결심을 해요. 그런데 다윗은 그다음에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숨기지 않았어요.
내가 잠잠하여 선한 말도 하지 아니하니 나의 근심이 더 심하도다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뜨거워서 작은 소리로 읊조릴 때에 불이 붙으니 나의 혀로 말하기를
「잠잠하여」는 입을 닫고 조용히 있었다는 말이고, 「근심」은 괴로운 마음이에요. 「읊조릴 때에」는 작게 중얼거렸다는 뜻이에요.
순서를 보세요. 입을 닫았어요. 그랬더니 괴로움이 더 심해졌어요. 그리고 속에서 뜨거워졌어요.
그래서 그가 다음으로 한 일
참는 게 잘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나서 다윗이 한 일은 그 말을 하나님께 하는 거였어요. 같은 노래 뒤쪽에서 그는 하나님께 이렇게 말해요. "내가 눈물 흘릴 때에 잠잠하지 마옵소서"(시편 39:12). 자기는 잠잠하겠다고 결심했었는데, 이번엔 하나님께 잠잠하지 마시라고 해요.
다른 날에는 숨어 있던 굴 안에서 이렇게 기도해요.
내가 소리 내어 여호와께 부르짖으며 소리 내어 여호와께 간구하는도다 내가 내 원통함을 그의 앞에 토로하며 내 우환을 그의 앞에 진술하는도다
「여호와」는 하나님이 성경에서 자기를 밝히신 이름이에요. 「원통함」은 억울해서 분한 마음이고, 「토로하며」는 숨기지 않고 다 말했다는 뜻이에요. 「우환」은 걱정되는 일이고, 「진술하는도다」는 하나하나 말했다는 말이에요.
소리를 내서 기도했어요. 억울한 걸 하나하나 다 말했어요.
하나님께 따진 기도도 그대로 남았어요
다윗이 하나님께 "언제까지 이러실 거예요"라고 네 번 연달아 물은 날도 있어요.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 나의 영혼이 번민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오며 내 원수가 나를 치며 자랑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리이까
「번민하고」는 괴로워서 마음이 답답했다는 말이에요. 「어느 때까지」가 네 번 나와요. 하나님이 자기를 잊으셨냐고까지 물어요.
하나님은 이 기도를 고쳐 주지 않으셨고, 사람들은 이 노래를 지우지 않고 그대로 두고 함께 불렀어요.
그리고 이 노래는 이렇게 끝나요. "나는 오직 주의 사랑을 의지하였사오니 나의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시편 13:5). 다윗은 화난 마음을 다 말하고 나서 하나님을 의지해요. 의지하려고 화를 먼저 지운 게 아니에요.
참을 거냐 말할 거냐, 둘 중 하나일까요
다윗은 둘을 다 했어요. 화나게 하는 사람 앞에서는 입을 닫았고, 아무도 없는 굴에서는 다 쏟아 놓았어요. 참을 거냐 말할 거냐를 고른 게 아니에요. 그 자리에서는 참고, 그다음에 하나님께 말했어요.
잠언이 말리는 건 사람 앞에서 다 퍼붓는 거예요. 그리고 하나님께 다 말한 기도는 시편에 그대로 남아 있어요. 둘은 서로 다른 일이에요.
지금 뭘 해볼까요?
누르는 대신 말로 옮기는 네 가지
화를 없애려고 애쓰는 건 잘 되지 않아요. 누르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있어요.
무슨 일에 화가 났는지 한 줄로 적기
다윗은 「원통함」과 「우환」을 하나하나 말했어요. 막연히 화가 난다고만 하지 않고, 무엇이 억울하고 무엇이 걱정되는지까지요. 지금 "짜증나"에서 멈춰 있다면 한 줄만 더 써 보세요. 누가, 무슨 말을 했을 때, 내가 뭐라고 생각했는지요.
적고 나서 바로 편해지지 않을 수도 있어요. 다윗도 네 번 따져 묻고 나서야 하나님을 의지했어요.
사람보다 먼저 하나님께 말하기
굴 안에서 한 기도가 그거예요. 그 자리에서 상대에게 쏟아붓는 것과 혼자서 그냥 삭이는 것 말고 하나가 더 있어요. 아무도 듣지 않는 데서 하나님께 다 말하는 거예요. 거친 말이 섞여도 괜찮아요. 시편에 그런 기도가 이미 들어 있어요.
해가 지기 전에 한 번은 꺼내기
에베소서 4:26은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라고 해요. 화를 품은 채로 날을 넘기지 말라는 말이에요. 오늘 안에 기도로든 글로든 한 번은 꺼내 놓고 자 보세요. 성경이 화를 어떻게 다루라고 하는지는 성경이 말해주는 분노 — 화가 날 때에 더 적어 뒀어요.
속을 아는 사람 한 명은 두기
교회에서는 화가 난다는 말이 유난히 늦게 나와요. 그 말이 곧 믿음 이야기로 넘어가니까요. 그래서 한 명은 미리 정해 두세요. 내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나보다 먼저 알아보는 사람이면 좋아요.
그 화가 몇 주씩 이어지고, 그 사람을 마주치는 게 괴로울 만큼 커진다면 혼자 버티지 마세요. 그때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나를 돌보는 일이에요.
하나님께 말을 거는 게 어색하게 느껴진다면 기도, 어떻게 시작하면 될까요도 함께 읽어 보세요.
소테리아 묵상은 짧은 성경 본문 하나와 질문 몇 개로 끝나요. 하루 3분이면 되고, 적은 글은 아무도 보지 않아요. 오늘 화가 났던 그 장면과 그때 든 마음을 그대로 적어 보세요. 계정을 만들지 않아도 지금 바로 열려요.
삭였던 마음을 기도로 적어 보기
로그인 없이 묵상해 보기자주 묻는 질문
- 화를 참는 게 신앙적으로 맞나요?
- 성경은 화를 사람에게 그대로 다 쏟아붓는 걸 말려요. 「어리석은 자는 자기의 노를 다 드러내어도 지혜로운 자는 그것을 억제하느니라」(잠언 29:11)라고 해요. 그런데 성경에는 화난 마음을 숨기지 않고 하나님께 그대로 말한 기도가 아주 많아요. 다윗은 「어느 때까지니이까」를 네 번 연달아 묻고도(시편 13:1-2) 그 기도가 성경에 그대로 남았어요. 사람에게 퍼붓지 않는 것과 그 마음이 없는 척하는 것은 다른 일이에요.
- 참으면 마음이 가라앉나요?
- 그 자리를 넘기는 데는 도움이 돼요. 감정을 다루는 방법을 실험으로 잰 비교 306건을 모아 본 조사에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누르는 방법은 효과가 있는 방향으로 나왔어요(웹·마일스·시어런, 2012). 그런데 같은 조사에서 그 일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누르는 방법은 효과가 없었어요. 눌리는 건 표정이고 생각은 그대로 남는다는 거예요. 집에 와서 그 장면을 다시 떠올리게 되는 게 그래서예요.
- 그럼 화를 터뜨리는 게 나은가요?
- 그건 더 분명히 아니에요. 600명에게 혹평을 받게 한 뒤 셋으로 나눠 본 실험에서, 상대를 생각하며 샌드백을 친 사람들은 화가 더 났고 그다음에 상대에게 더 세게 나갔어요. 2분 동안 그냥 앉아 있던 사람들이 가장 나았어요(부시먼, 2002). 성경이 보여 주는 건 세 번째 방법이에요. 그 자리에서는 참고, 그다음에 하나님께 말하는 거예요(시편 39:1, 시편 14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