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좋은 소식에 축하보다 한숨이 먼저 나온다면
친구의 좋은 소식에 축하가 늦게 나와 스스로 놀란 적 있나요? 사람이 비교를 멈추지 못하는 이유를 사회 비교 연구로 보고, 질투를 그대로 적어 둔 시편 73편과 잔치 앞에서 멈춘 큰아들을 함께 읽어요.
얼마 전에 아는 분이 조금 민망해하면서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친한 친구가 좋은 소식을 전해 왔는데, "축하해"가 조금 늦게 나왔대요. 말은 분명히 했는데 그 말보다 한숨이 먼저 나왔다고요.
이런 말을 꺼내는 분이 한둘이 아니에요. 친구가 시험에 붙었고, 동생이 좋은 데 취직했고, 같은 교회 사람이 집을 샀는데, 분명히 잘된 일이고 축하할 일인데도 마음이 바로 따라오지 않아요.
그리고 축하를 한 다음에 혼자 더 불편해져요. "나 이렇게 속 좁은 사람이었나."
이 글은 그 마음을 들여다보려고 해요. 먼저 왜 축하보다 한숨이 먼저 나오는지 보고, 같은 마음을 적어 둔 성경 속 사람들을 본 다음, 그 마음이 올라올 때 해볼 수 있는 걸 볼게요.
왜 축하가 바로 나오지 않을까요?
사람은 비교를 멈추기 어려워요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해요. 사람은 자기가 어디쯤 있는지 혼자서는 알지 못해요.
미국 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Leon Festinger)가 1954년에 내놓은 사회 비교 이론이 그 이야기예요. 사람에게는 자기 능력과 생각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키나 몸무게처럼 숫자로 재는 방법이 없어서, 결국 옆에 있는 사람을 보고 잰다는 거예요.
내가 하기로 마음먹고 재는 게 아니에요. 친구 소식을 들은 순간 머릿속에서는 이미 재고 있어요. 축하한다는 말은 그다음에 나와요. 그래서 축하가 늦어요.
페스팅거는 능력을 잴 때 늘 나보다 나은 사람과 비교하게 된다고 적었어요. 나보다 나은 사람이 먼저 눈에 들어와요. 그래서 좋은 소식을 들으면 바로 재게 돼요.
그런데 왜 어떤 소식은 아무렇지 않고, 어떤 소식은 듣고 나서 오래 불편할까요?
하필 그 친구 소식이 더 불편한 이유
사람은 자기와 비슷한 사람과 재요
페스팅거는 사람이 아무나와 재지 않는다고 봤어요. 잴 때는 나와 비슷한 사람과 재요. 나이가 비슷하고, 하는 일이 비슷하고, 같은 때에 같이 시작한 사람이요.
그래서 재산이 몇 조인 사람 이야기는 듣고도 아무렇지 않아요. 나와 너무 멀어서 비교할 생각조차 들지 않아요. 반대로 같은 교회에서 같이 중고등부를 다녔던 친구 소식은 한참 생각나요. 같이 시작했는데 지금은 차이가 난다는 게 바로 보이니까요.
그래서 하필 축하해야 하는 사람 소식이 제일 불편해요.
그 소식이 나와 비슷한 사람에게서 왔다는 뜻이에요. 모르는 사람 소식이었다면 아예 재지도 않았을 거예요.
그러면 이 마음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같은 마음을 적어 둔 사람들이 성경에 있어요.
성경은 이 마음을 먼저 알고 있었어요
질투를 적어 둔 기도, 잔치 앞에서 멈춘 사람
질투를 그대로 적어 둔 기도가 있어요
시편 73편은 아삽이라는 사람의 시예요. 아삽은 다윗 때 찬양을 맡았던 사람이에요(역대상 25:1). 노래로 하나님을 높이는 일이 직업이었던 사람이죠. 그 사람이 쓴 시가 이렇게 시작해요.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
「넘어질 뻔하였고」는 믿는 마음을 놓을 뻔했다는 말이에요. 「형통함」은 '하는 일이 다 잘되는 것', 「오만한 자」는 '자기가 제일인 줄 아는 사람'이고요.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이 오히려 잘되는 걸 보고 질투가 났다고 적은 거예요.
아삽은 이 말을 지우지 않았어요. 좋게 꾸미지도 않았고, 나중에 고쳐 쓰지도 않았어요. 그리고 혼자 머리로 풀어 보려다가 더 괴로워졌다고 적었어요.
내가 어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그것이 내게 심한 고통이 되었더니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성소」는 하나님께 예배하던 곳이에요. 「종말」은 잘되던 그 사람들의 '끝'이고요. 아삽은 혼자 생각할 때 더 괴로웠고, 하나님 앞에 갔을 때 달라졌다고 말해요.
부러움이 사라졌다는 말이 아니에요. 아삽이 보던 게 바뀌었어요. 잘되는 사람 말고 하나님을 봤어요.
그래서 이 시는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시편 73:28)로 끝나요. 하나님 가까이 있는 게 제일 좋다는 말이에요.
잔치 소리를 듣고 들어가지 않은 사람
예수님이 들려주신 이야기 하나에 사람이 둘 나와요(누가복음 15:11 이하). 흔히 '탕자 이야기'로 알려진 그 이야기예요. 집을 나갔다 돌아온 동생과, 집에 남아 있던 큰아들이요.
동생이 돌아오자 아버지는 잔치를 열었어요. 밭에서 일하다 돌아온 큰아들은 음악 소리와 춤추는 소리를 먼저 들었어요(누가복음 15:25).
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권한대」는 '들어오자고 말했다'는 뜻이에요. 「섬겨」는 '아버지 일을 해 드리고', 「명을 어김이 없거늘」은 '한 번도 말을 거스른 적이 없는데', 「벗」은 '친구'예요.
큰아들은 받은 것을 하나하나 세고 있어요. 자기에게는 염소 새끼 한 마리도 없었는데 동생에게는 살진 송아지를 잡아 줬다고 말해요(누가복음 15:30). 잘못한 것도 없이 오래 성실했던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에요.
아버지는 그 말을 틀렸다고 하지 않았어요. 대신 이렇게 답해요.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마땅하다」는 '당연하다'는 뜻이에요. 큰아들은 동생이 받은 걸 세고 있었고, 아버지는 네가 이미 가진 걸 말했어요. 그리고 이 장면에서 먼저 움직인 사람은 아버지예요. 문 앞에서 멈춘 아들을 그냥 두지 않고 밖으로 나왔어요.
부러운 마음이 올라오면 뭘 해볼까요?
느끼지 않으려고 애쓰는 대신 해볼 수 있는 것
부러움을 느끼지 않으려고 애쓰는 건 잘 되지 않아요. 느낀 다음에 무엇을 하는지를 바꿔 보는 거예요.
성경에는 그렇게 한 사람도 있어요. 모세가 혼자 백성을 다 돌보던 때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의 영이 내려서 그들이 예언을 했어요. 그걸 본 여호수아가 모세에게 달려와 "그들을 말리소서"라고 말해요(민수기 11:28). 모세만 그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한 말이었죠.
모세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두고 시기하느냐 여호와께서 그의 영을 그의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가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여호와」는 하나님이 성경에서 자기를 밝히신 이름이에요.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고요. 「시기」는 남이 받은 걸 보고 속상하고 싫어지는 마음이에요.
모세는 남이 받았다고 자기 것이 줄어든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더 많은 사람이 받으면 좋겠다고 말했어요.
축하를 먼저 말하기
마음이 따라오기를 기다리면 말할 때를 놓쳐요. 마음이 아직 즐겁지 않아도 축하하는 말은 할 수 있어요(로마서 12:15). 좋은 일을 누군가에게 말하면 그 일 자체와 별개로 그날 기분이 올라가고, 듣는 사람이 같이 기뻐해 줄 때 그 효과가 더 컸다는 연구도 있어요(게이블 외, 2004). 내가 한 축하가 그 사람에게 실제로 도움이 돼요.
부럽다는 말을 기도에 적기
아삽처럼 그대로 적어 보세요. "그 사람이 부럽습니다"까지만 써도 기도예요. 좋게 꾸며서 쓰면 정작 하고 싶은 말이 빠져요.
내가 한 일을 한 가지 적기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갈라디아서 6:4)는 남과 재지 말고 내가 한 일을 보라는 말이에요. 오늘 내가 한 일 한 가지를 적어 보세요. 적는 동안에는 남과 재지 않아요. 남과 비교하는 게 오래 힘들었다면 비교에 지친 마음에게 성경이 하는 말에 곁에 둘 구절을 모아 뒀어요.
소셜미디어를 잠깐 안 보기
소셜미디어에서 남과 자기를 재게 만든 실험 48편을 모아 본 연구가 있어요(맥콤 외, 2023). 그렇게 잰 쪽이 자기 평가와 기분이 조금 더 나빠졌어요. 그 소식이 유독 불편한 날에는 그 앱을 잠깐 닫아 두는 것도 방법이에요.
그 마음이 몇 주씩 이어지고, 그 사람을 마주치는 게 괴로울 만큼 커진다면 혼자 버티지 말고 믿을 만한 한 사람에게 털어놓아 보세요.
내 가치가 어디서 오는지가 더 궁금하다면 성경이 말해주는 자존감 — 내 가치는 어디서 올까요도 함께 읽어 보세요.
소테리아 묵상은 짧은 성경 본문 하나와 질문 몇 개로 끝나요. 하루 3분이면 되고, 쓴 글은 나만 볼 수 있어요. 오늘 들은 그 소식과 그때 든 마음을 거기 적어 보세요. 가입 절차 없이 바로 열려요.
부러웠던 마음을 기도로 적어 보기
로그인 없이 묵상해 보기자주 묻는 질문
- 남이 잘된 소식에 축하가 늦게 나오면 믿음이 없는 건가요?
- 그렇게 볼 근거는 없어요. 사람은 자기가 어디쯤 있는지 알고 싶어서 주변 사람을 보고 재요. 미국 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가 1954년에 정리한 사회 비교 이론이 그 이야기예요. 성경에도 찬양을 맡았던 아삽이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시편 73:3)라고 적어 둔 기도가 있어요.
- 부러운 마음이 드는 건 죄인가요?
- 부러움이 어디까지 가는지가 중요해요. 갈라디아서 5:26은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라고 말해요. 투기는 남이 잘되는 걸 싫어하는 마음이에요. 부럽다고 느끼는 것과, 그 사람이 잘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서로 다른 일이에요.
- 축하는 했는데 마음이 계속 불편하면 어떻게 하나요?
- 그 마음을 숨기지 않고 하나님께 말해 보세요. 시편 73편을 쓴 아삽도 혼자 생각할 때는 더 괴로웠다고 적었고(시편 73:16), 하나님 앞에 갔을 때 달라졌다고 했어요. 짧게 「부럽습니다」까지만 적어도 기도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