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테리아blog
앱 다운로드
성경적 가치관

생각을 정리하려고 했는데 더 괴로워졌다면

같은 생각을 몇 번이고 되풀이하는데 답은 안 나오는 날이 있어요. 연구자들은 이걸 반추라고 불러요. 생각을 멈추는 대신 되뇌는 내용을 바꾼 아삽의 노래를 함께 읽어요.

2026년 10월 26일·23분 읽기·SOLSUNG
실이 엉킨 뭉치 하나에서 실 한 가닥만 밖으로 빠져나온 크림색 바탕의 손그림

설거지를 하면서 혼자 중얼거리는 분을 본 적 있어요. 몇 년 전에 끝난 일인데, 그때 했어야 할 말을 지금 연습하고 있더라고요. 저도 그런 적이 있어서 좀 웃었어요.

한번 시작되면 안 끊기는 날이 있어요. 운전하다가, 이 닦다가, 누워서요. 같은 장면을 처음부터 다시 돌려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해요. "이만큼 생각했으면 답이 하나는 나와야 하는데."

그런데 답은 잘 안 나와요. 대신 질문이 커져요. 처음에는 "그 말을 왜 그렇게 했을까"였는데, 어느새 "나는 왜 늘 이럴까"가 돼요.

순서는 이래요. 먼저 그 생각이 왜 그렇게 안 멈추는지 보고, 재 봤을 때 무엇이 도움이 됐는지 확인하고, 밤새 같은 질문을 되풀이한 아삽이 그다음에 한 일을 볼게요.

생각을 많이 하면 정리가 될까요?

연구자들은 이걸 「반추」라고 불러요

생각이 안 멈추는 데는 이유가 있어요

하나만 먼저 말해 둘게요. 생각이 안 멈추는 건 머릿속이 고장 났다는 뜻이 아니에요.

걱정을 처음 이렇게 정의한 건 보르코벡 연구팀이에요. 1983년에 걱정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을 머릿속에서 풀어 보려는 시도라고 적고, 부정적인 감정이 섞여 있고 잘 멈추지 않는 생각과 장면이 계속 이어지는 거라고 덧붙였어요.

그러니까 그때 우리는 문제를 풀고 있는 거예요. 답이 나오면 그만둘 생각으로요. 게을러서도, 믿음이 약해서도 아니에요.

문제는 이 방식으로는 잘 안 풀린다는 거예요. 왜 그럴까요?

무엇을 생각하느냐가 문제일까요

같은 일을 떠올려도 사람마다 떠올리는 방식이 달라요. 연구에서는 그중 한 방식에 이름을 붙였어요.

놀런-혹스마와 위스코, 류보머스키가 2008년에 쓴 정리 글에서는 반추를 이렇게 적었어요. 괴로울 때 그 괴로운 느낌과, 그게 왜 생겼고 어떻게 될지를 되풀이해서 들여다보기만 하는 반응 방식이에요.

연구자들이 여기서 한 번 더 분명히 한 게 있어요. 반추는 무슨 생각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요. 떠올리는 방식에 붙인 이름이에요.

그래서 "그 일을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은 처음부터 좀 어긋나 있어요. 문제는 그 일이 아니니까요.

1년 뒤를 따라가 본 조사

이게 실제로 무엇과 이어지는지 따라가 본 조사가 있어요. 놀런-혹스마가 2000년에 성인 1,132명을 전화로 무작위로 뽑아 1년 간격으로 두 번 쟀어요.

되풀이해 들여다보는 성향이 센 사람들은 1년 뒤에 우울로 진단받는 경우가 더 많았고, 처음에 이미 있던 증상을 계산에서 빼고 봐도 마찬가지였어요.

다만 이 조사가 말하지 않은 것도 있어요

같은 조사에서 이미 있던 우울이 얼마나 오래 가는지는 이 성향으로 예측되지 않았어요. 처음 증상을 계산에서 빼면 기간은 설명되지 않았어요. 그러니 "되풀이하면 오래 앓는다"까지는 이 숫자로 말할 수 없어요.

한 가지는 미리 알려 드릴게요. 반추를 재는 설문은 놀런-혹스마와 모로가 1991년에 만든 22개 질문인데, "슬프거나 가라앉았을 때" 무엇을 하는지를 물어요. 그러니까 이 연구들이 보고 있는 건 가라앉은 마음에 대한 반응이에요. 모든 고민에 그대로 붙일 수 있는 이름은 아니에요.

걱정과 반추는 같은 걸까요

이 글을 읽다 보면 "그게 걱정이랑 뭐가 다른데" 싶을 거예요. 연구에서는 둘을 나눠서 봐요.

  • 걱정 — 아직 오지 않은 일을 봐요. "그렇게 되면 어쩌지"예요.
  • 반추 — 끝난 일을 되짚어요. "왜 그랬을까"예요.

그런데 일어나는 일은 거의 똑같아요. 둘 다 되풀이되고, 구체적인 장면 대신 뭉뚱그린 생각으로 커지고, 다른 데로 주의를 옮기기가 어려워져요. 그래서 우리가 "걱정"이라고 한 단어로 부르는 것 안에 사실 두 가지가 섞여 있어요.

그럼 생각을 멈추면 될까요?

단정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갈려요

"누르면 되돌아온다"는 말부터

이 이야기를 하면 꼭 나오는 말이 있어요. 생각을 억지로 참으면 오히려 더 떠오른다고요. 흰 곰을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흰 곰만 생각난다는 그 이야기예요.

그런데 이건 그렇게 단정할 수 없어요. 왕과 해거, 차치사란티스가 2020년에 그동안 나온 이 연구들을 모아 보니, 되돌아오는 정도는 작게 나왔고, 출판편향을 보정하니 0과 구분되지 않았어요. 표본의 절반쯤에서는 방향이 아예 반대였어요.

「출판편향을 보정하니」가 무슨 말인가요

효과가 나온 연구는 논문으로 실리고, 아무 차이가 없던 연구는 서랍에 남는 일이 많아요. 그래서 실린 것만 모으면 효과가 실제보다 크게 보여요. 서랍에 남았을 연구를 셈에 넣어 다시 계산하는 걸 출판편향 보정이라고 해요.

그러니 "참으면 터진다"도 "참으면 된다"도 지금은 단정할 수 없어요. 그런데 더 중요한 게 있어요.

재 봤을 때 도움이 된 것

왓킨스와 베이언스, 리드가 2009년에 마음이 가라앉아 있는 성인 60명을 셋으로 나눠 봤어요. 한 쪽은 같은 일을 더 구체적으로 생각하는 연습을 했어요.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있었고 다음에 무엇을 할지까지 떠올려 보는 거예요.

나머지 두 쪽은 이랬어요. 한 쪽은 아무것도 안 했고, 다른 한 쪽은 설명도, 연구자를 만나는 횟수도, 기간도 똑같은데 구체적으로 생각하는 그 부분만 빠진 연습을 했어요.

연습을 제대로 한 쪽은 아무것도 안 한 쪽과 모양만 같았던 쪽, 둘 다보다 우울 점수가 더 내려갔어요. 되풀이하는 정도도 아무것도 안 한 쪽보다 많이 줄었고요.

그러니까 효과를 낸 건 뭔가를 연습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생각했다는 그 부분이었어요. 생각을 줄이는 훈련이 아니에요. 같은 일을 그대로 생각하고, 생각하는 방식만 바꿨어요.

이 연구가 어디까지인지도 적어 둘게요

2009년 조사는 60명으로 한 번 한 실험이에요. 뒤에 같은 연구팀이 2012년에 1차의료, 그러니까 동네 의원에서 우울로 진단받은 환자 121명을 무작위로 나눠 다시 쟀어요. 평소 치료만 받는 쪽, 평소 치료에 구체성 연습을 더한 쪽, 평소 치료에 이완 훈련을 더한 쪽이에요. 구체성 연습을 더한 쪽이 평소 치료만 받은 쪽보다 우울 점수가 더 내려갔어요. 그런데 우울 점수만 보면 이완 훈련을 더한 쪽과 차이가 없었어요. 그러니 "이것만 된다"는 뜻은 아니에요. 다만 되풀이하는 정도와 뭉뚱그려 생각하는 정도는 구체성 연습 쪽이 이완 훈련 쪽보다 더 줄었어요.

"나눠 보세요"는 어디까지 맞을까요

교회에서 힘든 일이 있으면 듣는 말은 대개 하나예요. 나누라고요. 그런데 여기도 경우에 따라 달라요.

친구와 같은 문제를 몇 번이고 다시 이야기하면서 원인을 추측하고 부정적인 감정에 계속 머무는 것을 로즈가 2002년에 함께 반추하기라고 불렀어요.

로즈와 칼슨, 월러가 2007년에 아동·청소년 813명을 6개월 간격으로 두 번 쟀는데, 여자아이들은 이렇게 이야기를 나눌수록 우정의 질이 좋아졌고, 우울·불안 증상도 함께 늘었어요. 남자아이들은 우정의 질만 좋아졌고 증상은 늘지 않았어요.

이 조사는 아동·청소년을 본 거예요. 어른에게 그대로 옮길 수는 없어요. 그래도 하나는 분명해요. 나누지 말라는 뜻이 아니에요. 만나서 무엇을 이야기하는지에 따라 달라져요. 원인을 다시 추측하는 대화와, 무슨 일이 있었고 다음에 무엇을 할지로 옮기는 대화는 다르게 흘러가요.

성경은 이 마음을 먼저 알고 있었어요

밤새 같은 질문을 되풀이한 사람이 노래로 남겼어요

예배 때 부르려고 만든 노래예요

시편 77편은 아삽이 쓴 노래예요. 아삽은 다윗이 찬송을 맡기려고 따로 세운 사람이에요(역대상 25:1). 그러니까 이 노래는 혼자 쓴 일기가 아니고, 사람들 앞에서 함께 부르려고 만든 노래예요.

그 노래가 이렇게 시작해요.

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를 찾았으며 밤에는 내 손을 들고 거두지 아니하였나니 내 영혼이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시편 77:2

「환난」은 괴로운 일이에요. 「주」는 하나님을 부르는 말이고요. 「내 손을 들고 거두지 아니하였나니」는 기도하는 자세로 손을 들고 밤새 내리지 않았다는 뜻이에요.

마지막 줄을 한 번 더 보세요. 위로를 받지 못한 게 아니라, 받기를 거절했어요. 괴로울 때 누가 건네는 위로가 오히려 듣기 싫어지는 그 마음이에요.

그다음 줄이 이 글의 주제예요

내가 하나님을 기억하고 불안하여 근심하니 내 심령이 상하도다

시편 77:3

「심령」은 마음이에요. 「근심하니」는 걱정으로 마음이 무거웠다는 뜻이고요.

순서가 좀 이상하죠. 하나님을 기억했는데 불안해졌고, 기도하려고 떠올렸는데 마음이 더 상했어요. 성경을 읽어도 마음이 가라앉지 않던 날이 있다면 이 줄이 그 이야기예요.

그리고 아삽이 무엇을 생각했는지 말해요.

내가 옛날 곧 지나간 세월을 생각하였사오며

시편 77:5

지나간 일을 떠올렸어요. 좋았던 때인데, 지금과 비교가 되니까 더 아팠을 거예요.

질문이 꼬리를 물어요

그다음 줄들은 시편에서 제일 솔직한 대목 중 하나인데, 질문 여섯이 한 번도 쉬지 않고 이어져요.

주께서 영원히 버리실까, 다시는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실까, 그의 인자하심은 영원히 끝났는가, 그의 약속하심도 영구히 폐하였는가, 하나님이 그가 베푸실 은혜를 잊으셨는가, 노하심으로 그가 베푸실 긍휼을 그치셨는가 하였나이다

시편 77:7-9

옛말이 몇 개 있어요. 「인자하심」은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이에요. 「영구히 폐하였는가」는 영원히 없어졌느냐는 뜻이고, 「노하심」은 화내시는 것, 「긍휼」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에요.

질문이 커지는 순서를 보세요. 버리셨나로 시작해서 끝에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마저 그치셨느냐까지 가요. 하나를 묻고 답이 안 나오니까 더 큰 걸 물어요.

이 기도는 지워지지 않았어요

하나님이 이 질문들을 고쳐 주시지 않았어요. 사람들도 이 노래를 빼지 않았어요. 히스기야 왕 때도 사람들은 「아삽의 시」로 찬송했어요(역대하 29:30). 이렇게 물었던 노래가 예배 안에 그대로 남아 있어요.

아삽이 다음으로 한 일

여기서 노래가 바뀌어요. 그런데 바뀌는 방식이 우리가 예상하는 것과 좀 달라요.

곧 여호와의 일들을 기억하며 주께서 옛적에 행하신 기이한 일을 기억하리이다 또 주의 모든 일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며 주의 행사를 낮은 소리로 되뇌이리이다

시편 77:11-12

첫 낱말 「곧」은 앞 줄에서 이어지는 말이에요. 「여호와」는 하나님이 성경에서 자기를 밝히신 이름이에요. 앞에서 나온 「주」와 같은 분을 부르는 말이에요. 「기이한 일」은 사람이 할 수 없는 놀라운 일이고, 「행사」는 하신 일이에요. 「읊조리며」는 작은 소리로 중얼거린다는 뜻이고, 「되뇌이리이다」는 되풀이해 말하겠다는 뜻이에요.

아삽은 되뇌기를 멈추지 않았어요. 생각을 그만하겠다고도, 중얼거리기를 그만두겠다고도 하지 않았어요. 달라진 건 하나예요. 무엇을 되뇌는지가 바뀌었어요.

앞에서 아삽이 되뇐 건 「지나간 세월」이었어요(시편 77:5). 뒤에서 되뇌는 건 「주의 모든 일」이에요. 자기가 잃은 것을 생각하다가 하나님이 하신 일을 떠올려요.

떠올린 것도 구체적이에요

그다음에 아삽이 실제로 떠올린 걸 보면 더 분명해져요.

주의 길이 바다에 있었고 주의 곧은 길이 큰 물에 있었으나 주의 발자취를 알 수 없었나이다 주의 백성을 양 떼 같이 모세와 아론의 손으로 인도하셨나이다

시편 77:19-20

바다가 갈라진 날이에요. 모세와 아론의 이름이 나오고, 물과 구름과 번개까지 나와요(시편 77:16-18).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에요" 같은 말로 넘어가지 않고, 언제, 어디서, 누구를 데리고 무엇을 하셨는지를 하나하나 떠올렸어요.

같은 노래 안에서 두 번 중얼거렸는데 내용이 달랐어요. 앞쪽은 「지나간 세월」이라는 뭉뚱그린 생각이었고, 뒤쪽은 장소와 사람 이름이 나오는 일이었어요.

지금 뭘 해볼까요?

생각을 멈추는 대신 되뇌는 내용을 바꾸는 세 가지

생각을 그만하려고 애쓰는 건 잘 되지 않아요. 아삽도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왜」를 「무엇」으로 바꿔 적기

떠오른 생각을 그대로 적어 보면 대개 「왜」로 시작해요.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왜 나는 늘 이럴까"요. 이 질문에는 끝이 없어요. 답이 나오지 않으면 더 큰 「왜」로 옮겨 가니까요.

무슨 일이 있었고, 누가 무슨 말을 했고, 내가 뭐라고 대답했는지 한 줄만 바꿔 적어 보세요. 왓킨스 연구팀이 2009년에 효과를 확인한 연습이 이런 것이었어요. 아삽이 뒤쪽에서 떠올린 것도 바다와 구름, 모세와 아론처럼 실제로 있었던 일이었어요.

하나님이 하신 일 하나를 날짜까지 적기

아삽이 되뇌기를 바꿀 때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에요"로 넘어가지 않았어요. 바다가 갈라진 날과 모세와 아론의 이름까지 떠올렸어요.

그러니 「감사한 것」을 떠올리려 애쓰지 말고, 실제로 있었던 일 하나를 날짜까지 적어 보세요. 작아도 괜찮아요. 아삽이 떠올린 것도 자기 일이 아니라 아주 오래전 일이었어요.

되풀이되는 그 문장을 기도로 옮기기

아삽은 하나님께 「영원히 버리실까」까지 물었어요. 그 질문이 노래에 그대로 남아 있어요.

머릿속에서 열 번 돌던 그 문장을 그대로 기도로 적어 보세요. 다듬지 않아도 돼요. 혼자 생각할 때와 달라지는 게 하나 있어요. 기도에는 들어 주시는 분이 있어요.

그 생각이 몇 주씩 이어지고, 일이나 잠에 지장이 올 만큼 커진다면 혼자 버티지 마세요. 그때는 전문가를 찾아보는 것도 나를 돌보는 방법이에요.


하나님께 말을 거는 게 어색하게 느껴진다면 기도, 어떻게 시작하면 될까요도 함께 읽어 보세요. 불안한 날 기도가 유난히 길어지는 이유는 불안한 날 기도가 길어지는 이유에 적어 뒀어요.

소테리아 묵상은 짧은 성경 본문 하나와 질문 몇 개예요. 하루 3분이면 끝나고, 쓴 글은 나만 봐요. 오늘 몇 번이고 되풀이한 그 문장을 그대로 적어 보세요. 가입하지 않고 지금 바로 열 수 있어요.

돌고 있던 생각을 기도로 적어 보기

로그인 없이 묵상해 보기
#걱정#반추#기도#시편#아삽

자주 묻는 질문

같은 생각을 되풀이하는 걸 뭐라고 하나요?
연구에서는 「반추」라고 불러요. 괴로울 때 그 느낌과, 그게 왜 생겼고 어떻게 될지를 되풀이해서 들여다보기만 하는 방식이에요(놀런-혹스마·위스코·류보머스키, 2008). 여기서 중요한 건 무슨 생각을 하느냐가 아니라 생각하는 방식이에요. 같은 일을 떠올려도 되풀이하며 들여다보기만 하는 것과,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짚어 보는 것은 다르게 흘러가요.
걱정과 반추는 같은 건가요?
보는 방향이 달라요. 걱정은 아직 오지 않은 일을 봐요. 「그렇게 되면 어쩌지」예요. 반추는 끝난 일을 되짚어요. 「왜 그랬을까」예요(놀런-혹스마·위스코·류보머스키, 2008). 그런데 돌아가는 모양은 비슷해요. 둘 다 되풀이되고, 뭉뚱그려 생각하게 되고, 다른 데로 주의를 옮기기 어려워져요.
생각을 억지로 참으면 더 심해지나요?
자주 들리는 말이지만 그렇게 단정할 수는 없어요. 억지로 참으면 그 생각이 되돌아온다는 연구들을 모아 본 조사에서, 되돌아오는 정도는 작게 나왔고 출판편향을 보정하니 0과 구분되지 않았어요. 표본의 절반쯤에서는 방향이 반대였어요(왕·해거·차치사란티스, 2020). 억지로 참는 쪽을 따로 재 본 조사는 아니지만, 분명하게 도움이 된 건 같은 일을 더 구체적으로 생각하는 연습이었어요. 설명과 기간을 똑같이 맞추고 구체적으로 생각하는 부분만 뺀 연습과 견줘도 그랬어요(왓킨스·베이언스·리드, 2009).
힘든 일을 사람들과 나누면 나아지나요?
무엇을 어떻게 나누는지에 따라 갈려요. 친구와 같은 문제를 반복해 이야기하며 원인을 추측하고 부정적인 감정에 머무는 것을 「함께 반추하기」라고 불러요(로즈, 2002). 아동·청소년 813명을 6개월 간격으로 두 번 잰 조사에서, 여자아이들은 이렇게 이야기를 나눌수록 우정의 질이 좋아졌고 우울·불안 증상도 함께 늘었어요. 남자아이들은 우정의 질만 좋아졌어요(로즈·칼슨·월러, 2007). 아동·청소년을 본 조사라 어른에게 그대로 옮길 수는 없어요. 그래도 나누는 자리에서 원인을 되짚기보다 무슨 일이 있었고 다음에 무엇을 할지로 옮기는 게 근거에 더 맞아요.
X에 공유

같이 읽으면 좋은 글

묵상 시작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