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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가치관

소그룹에서 나만 믿음이 약한 것 같다면

돌아가며 이야기하는 시간에 나만 할 말이 없는 것 같은 날이 있어요. 같은 모임에서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여럿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쓴 두 줄과 함께 읽어요.

2026년 11월 2일·21분 읽기·SOLSUNG
둥글게 놓인 의자 다섯 개 중 하나만 바깥쪽으로 조금 밀려나 있는 크림색 바탕의 손그림

소그룹에서 한 사람씩 돌아가며 이야기하는 시간을 보면, 다들 어쩌면 그렇게 말을 잘 정리해서 하는지 신기하더라고요. 그러다 자기 차례가 오면 할 말이 갑자기 사라진다는 분들이 꽤 있어요.

앞사람은 요즘 읽은 말씀 이야기를 해요. 그 옆 사람은 기도한 일이 어떻게 풀렸는지 이야기하고요.

속으로 이런 생각이 들죠. "나만 요즘 아무것도 없는데."

그래서 말을 줄여요. "저는 뭐 비슷해요" 하고 넘겨요. 집에 오는 길에 한 번 더 생각해요. 나만 믿음이 약한 걸까.

순서는 이래요. 먼저 왜 그렇게 느껴지는지 봐요. 그다음 이 어긋남에 붙은 이름을 보고, 그 이름이 어디까지 말할 수 있는지도 확인해요. 마지막은 2천 년 전 고린도 교회에 바울이 쓴 두 줄이에요.

다들 나보다 확신이 있어 보이나요?

같은 모임에서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여럿일 수 있어요

내가 아는 내 속, 내가 보는 남의 겉

모임에서 내가 아는 건 두 가지예요. 내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 전부와, 다른 사람들이 입 밖으로 꺼낸 말이에요.

내 머릿속에는 다 들어 있어요. 어제 기도하다 졸았던 것도, 성경을 펴고 세 줄 읽다 덮은 것도, 그러고도 괜찮은 척했던 것도요.

다른 사람에게서 내가 받는 건 한 가지예요. 그 사람이 모임에서 고르고 골라 꺼낸 다섯 문장이요.

그러니까 나는 내 전부와 남의 다섯 문장을 나란히 놓고 봐요. 어느 쪽이 더 멀쩡해 보일지는 정해져 있어요.

어긋남이 한 방향으로 쌓여요

여기서 중요한 건 이게 나 혼자 하는 착각이 아니라는 점이에요.

그 모임에 앉은 사람 여섯이 똑같이 하고 있어요. 여섯 명이 각자 자기 속을 다 보고, 나머지 다섯의 겉만 봐요. 그러면 여섯 명 전부가 "나만 그렇다"는 결론에 닿아요.

그래서 같은 방에서 같은 생각이 여섯 개 돌아요

각자 꺼내지 않은 말은 모임에 없는 말이 돼요. 꺼내지 않았으니 다른 사람은 모르고, 모르니까 "나만 그런가 보다" 하고 또 꺼내지 않아요.

이 마음을 성경이 말해주는 외로움에서 한 번 다룬 적이 있어요. 사람들 사이에 있는데도 혼자인 것 같은 그 느낌이요. 소그룹은 꺼낸 말만 들리는 자리예요. 한 사람씩 돌아가며 말하니까 꺼낸 말은 다 들리고, 안 꺼낸 말은 하나도 안 들려요.

이 어긋남에는 이름이 있어요

100년쯤 된 이름인데, 어디까지 말할 수 있는지도 꽤 정해져 있어요

「아무도 확신하지 못하는데, 모두가 남들은 확신한다고 확신한다」

연구에서는 이걸 다원적 무지라고 불러요. 이름이 붙은 건 1931년이에요. 올포트가 1924년에 낸 책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먼저 했는데 그 책에는 아직 이 말이 없고, 제자 카츠와 같이 낸 1931년 책에서 처음 나와요(밀러, 2023).

밀러가 2023년에 쓴 정리 글에서는 이렇게 적었어요. 집단 구성원이 또래의 생각과 감정, 남에게 보이지 않는 행동을 체계적으로 잘못 짐작하는 상태예요. 「다원적」은 여러 사람이 함께 있다는 말이고 「무지」는 모른다는 말이니까, 여러 사람이 한자리에 있으면서 서로의 속을 모르고 있다는 뜻이에요.

같은 글이 선을 하나 그어요. 이 이름은 한 사람에게는 붙일 수 없어요. 개인은 다원적 무지를 겪을 수 없고 집단만 겪어요. 어긋남이 여러 사람에게 함께 있어야 이 이름이 붙어요.

이 절의 제목은 밀러와 맥팔랜드가 1987년에 쓴 문장이에요. 두 사람은 사람들이 창피함을 「내 행동은 설명하지만 남의 행동은 설명하지 않는 것」으로 여긴다고 봤어요. 실험에서 사람들은 창피할 수 있는 행동을 스스로는 피하면서, 다른 사람들은 그 행동을 할 거라고 더 많이 짐작했어요.

그 느낌은 겉도는 마음과 같이 와요

프렌티스와 밀러가 1993년에 미국 대학생들에게 술 마시는 문화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어요. 연구를 네 번 이어서 했어요.

학생들은 자기가 평균적인 학생보다 그 문화를 더 불편해한다고 믿고 있었어요. 친구들을 떠올려 보라고 해도 같은 답이 나왔어요. 그리고 이 어긋남이 학생들 사이에 널리 나타났어요.

네 번째 연구에서 하나를 더 쟀어요. 자기가 남들과 다르다고 느낄수록 학교에서 겉도는 느낌도 컸어요. 그 차이가 사실은 착각이었는데도요.

그런데 조건이 하나 붙어요

여기까지만 읽으면 "사람 많은 데서는 늘 이렇다"로 들려요. 그렇지 않아요.

보사리와 캐리가 2003년에 대학생 음주 연구 23편을 모아 봤어요. 그 안에서 따로따로 잰 비교 102개 가운데 93개에서 "나는 남들보다 덜 마시고 덜 너그럽다"는 방향이 나왔어요.

그런데 같은 분석이 이렇게도 말해요. 어긋남의 크기가 상대를 얼마나 멀게 떠올리느냐에 달려 있었어요. 「평균적인 학생」처럼 뭉뚱그려 떠올릴 때는 컸고, 가까운 사람을 떠올릴 때는 작았어요.

리드 연구팀이 2020년에 신입생 654명에게 친한 친구 다섯 명의 이름을 적게 하고 그 친구들이 얼마나 마시는지 짐작해 보라고 했어요. 이름을 적은 친구를 두고 한 짐작은 꽤 정확했어요. 한쪽으로 치우치는 경향은 뚜렷하지 않았고요.

그래서 이 글의 결론이 「모임을 피하라」가 아니에요

어긋남은 「우리 소그룹 사람들」을 뭉뚱그려 떠올릴 때 커졌어요. 한 사람씩 이름을 떠올리고 그 사람이 실제로 한 말을 아는 만큼 짐작이 정확해졌고요. 적어도 재 본 데서는 그랬어요.

여러 나라에서 다시 쟀어요

가이거 연구팀이 2025년에 열한 나라 성인 3,653명에게 기후 변화 이야기로 물었어요.

물은 건 걱정이 아니라 생각이에요. 「기후가 변하고 있고 거기엔 사람이 한 몫 했다」고 보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를 짐작해 보라고 했어요. 사람들은 그 수를 실제보다 적게 짐작했어요. 짐작한 비율과 실제 비율의 차이가 가장 작은 인도네시아가 7.5%, 가장 큰 브라질이 20.8%였어요. 열한 나라가 전부 같은 방향이었어요.

사람들은 자기 생각이 남들보다 유별나다고 여기는데, 모아 보면 그 「남들」이 자기와 비슷해요. 혼자 하는 착각이라면 사람마다 방향이 달라서 모아 놓으면 서로 지워져요. 이건 지워지지 않아요.

여기부터는 아직 말할 수 없어요

같은 연구에서 실제 비율을 알려 주면 사람들이 달라지는지도 봤어요.

알려 주는 것만으로는 잘 안 바뀌었어요

실제 다수 의견을 알려 준 것은 대체로 효과가 없었어요. 더 크게 모아 본 조사도 같았어요. 파파콘스탄티누 연구팀이 2025년에 "남들은 이렇게 한다"고 알려 주는 연구 89편을 모았는데(논문 60편에서 뽑았어요), 작은 효과가 나왔다가 출판편향을 보정하니 거의 0이 됐어요. 효과가 나온 연구는 논문으로 실리고 아무 차이가 없던 연구는 서랍에 남는 일이 많아요. 그래서 실린 것만 모으면 효과가 실제보다 크게 보여요. 서랍에 남았을 연구를 셈에 넣어 다시 계산한 게 보정이에요.

밀러도 2023년에 같은 말을 적었어요. 이 현상을 일부러 만들어 내는 널리 쓸 수 있는 방법이 없고, 지금까지 나온 사례들은 예측해서 찾은 게 아니라 하다가 발견한 것들이라고요.

교회를 잰 연구가 하나 있어요 — 거기서 잰 건 믿음의 세기가 아니에요

교회에서 이걸 잰 연구가 있어요. 2025년 오클랜드 대학 박사 논문이고, 뉴질랜드 성공회를 두고 쟀어요. 먼저 주교와 성직자, 평신도 15명을 면담해 주제를 뽑고, 참가자 229명(성직자 66명·평신도 163명)에게 자기 생각과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라고 내가 짐작한 것」을 짝지어 물었어요. 작은 주제 26개 가운데 20개에서 그 어긋남이 통계적으로 뚜렷했어요. 다만 물은 주제는 예배 전통과 의례 실천, 결혼에 대한 생각이고 믿음의 세기는 아니었어요. 그러니 「나만 믿음이 약한가」를 바로 잰 연구는 아직 없다고 읽어 주세요. 이 절의 다른 연구들은 교회 밖에서 잰 거예요. 1980년대 실험실이고, 미국 대학생이고, 기후 이야기예요. 같은 건 재는 방식이에요. 내 생각과 「남들의 생각이라고 내가 짐작한 것」을 따로 물어서 둘이 어긋나는지 봐요.

숫자가 말해 주는 건 여기까지예요. 모임에서 서로를 잘못 읽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어긋남이 한 사람의 실수가 아니라 여럿에게 같이 생긴다는 것이에요. 「너만 그런 게 아닐 수 있다」는 그 안에 들어 있어요. 그다음은 약속하지 않을게요.

그런데 성경은 이걸 먼저 알고 있었어요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쓴 편지에 두 줄이 나란히 있어요

고린도 교회가 다투던 문제예요

고린도전서 10장은 우상 숭배 이야기예요. 고린도는 항구 도시였고, 시장에서 파는 고기 중에 신전에 바쳤던 고기가 섞여 있었어요. 그걸 먹어도 되는지를 두고 교회 안에서 말이 갈렸어요.

바울이 그 이야기를 하면서 옛날 일을 하나 꺼내요.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고린도전서 10:1

이집트에서 나온 사람들 이야기예요. 구름이 낮에 그들을 이끌었고, 바다가 갈라져 그 사이로 걸어 나왔어요. 다 같은 일을 겪었다는 말이에요. 그러고도 그들 다수가 광야에서 멸망했다고 바울이 덧붙여요(고린도전서 10:5).

바로 앞 줄은 멀쩡해 보일 때 하는 말이에요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고린도전서 10:12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자기가 잘 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모임에서 말을 잘하던 그 사람에게도 하는 말이고, 그 말을 듣고 있던 나에게도 하는 말이에요. 겉으로 잘 서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게 실제로 잘 서 있다는 뜻은 아니라고요.

그리고 바로 다음 줄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린도전서 10:13

요즘 안 쓰는 말이 네 개 나와요. 「시험」은 견디기 힘든 일이나 넘어가고 싶어지는 마음이에요. 「감당」은 견뎌 내는 것이고요. 「미쁘사」는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어서라는 뜻이에요. 「피할 길을 내사」는 빠져나갈 길을 만들어 주셔서라는 말이고요.

이 문장이 다루는 건 우상 앞에서 흔들리는 일이에요. 그런데 바울이 그 말을 꺼내면서 먼저 깔아 둔 게 있어요. 너희가 당한 것은 사람들이 다 당하는 일이라고요.

두 줄을 붙여서 읽어 보세요. 하나는 잘 서 있다고 생각할 때 듣는 말이고, 하나는 흔들릴 때 듣는 말이에요. 그런데 바울은 둘을 같은 사람들에게 같이 썼어요. 한 모임 안에서 한 사람이 둘 다일 수 있다는 거예요.

이 두 줄이 순서대로 놓인 게 이 글의 핵심이에요

바울은 둘 중 하나만 고르지 않았어요. 멀쩡해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고 하고, 못 따라가는 것 같아도 네가 유별난 게 아니라고 해요. 모임 안에서 서로를 잘못 읽는 일을 양쪽에서 다 말하고 있어요.

그럼 오늘은 뭘 해볼까요

베드로가 버티라고 하면서 내놓은 근거가 조금 뜻밖이에요

근거가 「다른 사람들도 그렇다」예요

베드로는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살던 사람들에게 편지를 썼어요. 모이기도 어렵고 서로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었어요.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베드로전서 5:9

「대적하라」는 맞서라는 뜻이에요. 「동일한 고난」은 똑같은 어려움이고요. 「앎이라」는 알기 때문이라는 말이에요.

버티라고 말한 다음에 붙인 근거를 보세요. 기도를 더 하라거나 믿음을 더 키우라는 말이 뒤에 붙지 않아요. 다른 데 있는 사람들도 똑같이 겪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라고 해요.

성경이 버틸 근거로 다른 사람들의 사정을 꺼낸 거예요.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아는 게 실제로 힘이 된다고 보고 있어요.

오늘 해볼 수 있는 것

소그룹에 다시 앉기 전에
  • 정리된 말 대신 정리 안 된 한 줄을 꺼내 보세요. "요즘 말씀이 잘 안 읽혀요" 한 문장이면 돼요. 이유까지 설명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 나누는 시간에 누가 말을 아끼는지 한 번 봐 두세요. 짧게 넘어간 사람이 할 말이 없는 게 아닐 수 있어요.
  • 입 밖으로 꺼내기 어려우면 혼자 적어 두세요. 적어 두면 다음에 꺼낼 때 말이 쉽게 나와요.

세 번째가 가장 쉬워요. 소테리아의 묵상에는 쓰는 칸이 있어요. 오늘 모임에서 하지 못한 한 줄을 거기에 먼저 적어 보세요. 적어 두는 것만으로 정리되는 게 생각보다 많아요. 교회 일이 버거워진 게 믿음이 식었다는 뜻일까요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어요.

모임에서 못 꺼낸 한 줄 적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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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그룹#공동체#믿음의 흔들림#고린도전서#다원적 무지

자주 묻는 질문

다원적 무지가 무슨 뜻인가요?
집단 구성원이 또래의 생각과 감정, 남에게 보이지 않는 행동을 체계적으로 잘못 짐작하는 상태를 말해요(밀러, 2023). 「다원적」은 여러 사람이 함께 있다는 말이고 「무지」는 모른다는 말이에요. 같은 글이 선을 하나 긋는데, 이 이름은 한 사람에게는 붙일 수 없어요. 개인은 다원적 무지를 겪을 수 없고 집단만 겪어요. 프렌티스와 밀러가 1993년에 미국 대학생들에게 술 마시는 문화를 물었을 때, 학생들은 자기가 평균적인 학생보다 그 문화를 더 불편해한다고 믿고 있었어요. 그런 답이 학생들 사이에 널리 나타났고요.
모임에 「사실은 다들 그렇다」고 알려 주면 되지 않나요?
그게 생각만큼 잘 안 돼요. 가이거 연구팀이 2025년에 열한 나라 성인 3,653명에게 실제 비율을 알려 주고 달라지는지 봤는데, 대체로 효과가 없었어요. 더 크게 모아 본 조사도 같아요. 파파콘스탄티누 연구팀이 2025년에 「남들은 이렇게 한다」고 알려 주는 연구 89편을 모았는데(논문 60편에서 뽑았어요), 작은 효과가 나왔다가 출판편향을 보정하니 거의 0이 됐어요. 그래서 이 글은 「알려 주면 바뀐다」까지 가지 않고 「너만 그런 게 아닐 수 있다」까지만 말해요.
고린도전서 10장 13절을 이렇게 읽어도 되나요?
이 문장이 바로 다루는 건 우상 앞에서 흔들리는 일이에요.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신전에 바쳤던 고기를 먹어도 되느냐는 문제로 쓴 대목이에요. 그래서 「내가 느끼는 모든 마음은 다 똑같다」는 뜻으로 읽을 구절은 아니에요. 다만 바울이 그 말을 꺼내면서 먼저 깔아 둔 전제는 그대로 읽을 수 있어요.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네가 당한 것은 사람들이 다 당하는 일이라는 말이에요.
믿음이 약한 걸 그냥 두라는 뜻인가요?
아니에요. 바울은 바로 다음 절에서 「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고 해요(고린도전서 10:14). 흔들리는 것을 그대로 두라는 말이 아니고, 네가 유별나서 그런 게 아니라는 말이에요. 두 가지는 같이 서요. 바로 앞 절에서는 잘 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하고요(고린도전서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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