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 말해주는 외로움
혼자인 것 같을 때
요즘은 연락할 사람이 없어서 외로운 게 아니더라고요. 제 주변만 봐도 단톡방은 하루 종일 울려요. 정작 속마음을 털어놓을 데가 없어 휴대폰만 내려놓는 분들이 많고요. 성경은 이 외로움을 어떻게 다룰까요. 혼자인 것 같은 날 곁에 둘 다섯 장면을 적어 볼게요.
"나만 남았어요" — 정말 그랬을까요
엘리야는 인생에서 가장 큰 일을 막 끝낸 참이었어요. 그런데 왕비의 위협 한 번에 광야로 도망쳐요. 나무 아래 앉아서는 목숨을 거두어 달라고 기도하고요. 호렙 산 동굴에서 하나님이 "너는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물으시자, 그는 이렇게 대답해요.
엘리야가 대답하였다. "나는 이제까지 주 만군의 하나님만 열정적으로 섬겼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주님과 맺은 언약을 버리고, 주님의 제단을 헐었으며, 주님의 예언자들을 칼로 쳐서 죽였습니다. 이제 나만 홀로 남아 있는데, 그들은 내 목숨마저도 없애려고 찾고 있습니다."
"나만 홀로 남아 있는데." 외로우면 늘 이런 생각이 들어요. 나만 이런 것 같고, 남은 사람은 나 하나인 것 같고요.
하나님의 대답이 뜻밖이에요. 먼저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쪼개고, 지진이 일고, 불이 났는데 그 안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어요. 하나님은 "부드럽고 조용한 소리"로 오세요(열왕기상 19:12). 큰 소리로 몰아붙이는 대신, 들릴락 말락 한 소리로요. 뒤이어 이렇게 알려 주세요.
그러나 나는 이스라엘에 칠천 명을 남겨 놓을 터인데, 그들은 모두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도 아니하고, 입을 맞추지도 아니한 사람이다.
7,000명이요. 엘리야가 혼자라고 믿던 그 시간에도, 그가 모르는 곳에 7,000명이 있었던 거예요. 외롭다고 해서 정말 혼자인 건 아니에요. 그럼 아무도 나를 못 보는 것 같을 때는요?
아무도 못 보는 자리에서
하갈은 종이었어요. 임신한 몸으로 여주인에게서 도망쳐 나온 참이었고요. 아무도 찾아 나서지 않을 사람이, 아무도 없는 사막에 있었던 거죠. 거기서 하나님의 천사가 하갈을 만나요. 그런데 첫마디가 이름이에요. "사래의 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길이냐?"(창세기 16:8)
하갈은 "내가 여기에서 나를 보시는 하나님을 뵙고도, 이렇게 살아서, 겪은 일을 말할 수 있다니!" 하면서, 자기에게 말씀하신 주님을 "보시는 하나님"이라고 이름지어서 불렀다.
하갈은 하나님을 "보시는 하나님"이라고 불렀어요. 히브리말로 '엘로이', 나를 보고 계신 하나님이라는 뜻이에요. 사막에서 하갈의 사정이 곧바로 바뀐 건 아니에요. 하갈이 붙든 건 나를 보고 계신 분이 있다는 사실 하나였어요. 구하러 온 사람은 아직 없었고요.
외로움을 기도에 그대로 적어도 되나요
"이런 마음까지 기도로 꺼내도 되나" 싶을 때가 있죠. 힘든 티를 내면 믿음이 없어 보일까 봐요. 시편에 이런 기도가 있어요.
주님, 나를 돌보아 주시고,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나는 외롭고 괴롭습니다.
기도 한가운데 "나는 외롭고 괴롭습니다"라고 적혀 있어요. 마음을 꾸미지 않고, 외로운 걸 외롭다고 말한 거예요. 이 기도가 성경에 있으니 우리도 같은 말을 해도 돼요. 오늘 마음이 그렇다면, 그 한 줄이 오늘의 기도로 충분해요.
예수님도 혼자 남으셨어요
외로움을 가장 잘 아는 분이 누구냐고 하면, 성경은 조금 뜻밖의 장면을 보여 줘요. 예수님은 겟세마네에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여기에 머무르며 나와 함께 깨어 있어라"(마태복음 26:38)라고 부탁하셨는데, 돌아와 보니 셋 다 자고 있었죠. 그런데 그전에 이미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보아라, 너희가 나를 혼자 버려 두고, 제각기 자기 집으로 흩어져 갈 때가 올 것이다. 그 때가 벌써 왔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니, 나는 혼자 있는 것이 아니다.
한 구절 안에 두 말이 같이 있어요. 다 흩어질 거라고 먼저 말씀하시고, 바로 이어서 "나는 혼자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세요. 곁에 아무도 남지 않아도 혼자가 아닐 수 있다는 거예요.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같은 약속을 하셨어요. "보아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마태복음 28:20).
하나님은 외로움을 어떻게 다루실까요
그렇다고 성경이 "하나님만 있으면 사람은 없어도 된다"고 말하진 않아요. 오히려 반대로 말해요.
하나님은, 외로운 사람들에게 머무를 집을 마련해 주시고, 갇힌 사람들을 풀어 내셔서, 형통하게 하신다.
하나님은 외로운 사람을 혼자서도 씩씩하게 만드시는 게 아니라, 머무를 집을 마련해 주세요. 함께 지낼 사람들을 곁에 두신다는 말이에요. 엘리야에게 7,000명을 알려 주신 것도, 광야의 하갈에게 천사를 보내신 것도 다 그런 거예요. 그래서 외로움이 길어질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도 대단한 게 아니에요. 나를 아는 사람 한 명에게 먼저 연락하는 것, 그 정도면 이미 시작이에요. 성경이 말해주는 관계에서 나눈 것처럼, 우리는 원래 혼자 살도록 지어지지 않았으니까요.
- 나만 남은 게 아니었다 — 내가 모르던 7,000명 (열왕기상 19:18)
- 아무도 못 보는 자리에서 — 나를 보고 계신 하나님 (창세기 16:13)
- 외롭다고 그대로 적기 — 외로운 마음을 꾸미지 않고 기도해도 된다 (시편 25:16)
- 혼자 남는 것과 혼자인 것 — 둘은 같지 않다 (요한복음 16:32)
- 머무를 집을 마련하심 — 하나님은 함께할 사람을 보내 주신다 (시편 68:6)
외로움이 몇 주 넘게 이어지고 잠·식사·일상이 흔들린다면, 그건 믿음의 문제라기보다 몸과 마음이 보내는 신호예요. 엘리야에게 하나님이 가장 먼저 챙겨 주신 것도 먹을 것과 물, 그리고 잠이었어요(열왕기상 19:5-8). 믿을 만한 사람에게 이야기를 꺼내고, 필요하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나를 돌보는 방법이에요.
혼자인 것 같은 오늘
외로움을 오늘 안에 끝내려고 애쓰지 않아도 돼요. 위 다섯 장면 중 마음에 가장 오래 머무는 하나를 곁에 두는 것부터면 충분해요. 불안할 때 힘이 되는 성경 구절처럼, 마음이 흔들릴 때 펴 볼 한 구절을 미리 정해 두면 그날이 조금 덜 길게 느껴져요.
이렇게 한 구절을 곁에 두고 싶다면, 소테리아는 하루 3분 부담 없이 말씀 안에 머물 수 있게 도와요.
하루 3분, 혼자인 것 같은 날에
소테리아에서 묵상 시작하기자주 묻는 질문
- 성경은 외로움에 대해 뭐라고 말하나요?
- 성경은 외로움을 없애야 할 감정으로 다그치지 않아요. 시편 25:16은 "나는 외롭고 괴롭습니다"라고 기도 안에 그대로 적어 두고, 열왕기상 19장은 "나만 홀로 남았다"고 말하는 엘리야에게 먹을 것과 잠을 먼저 주세요. 그러고 나서 그가 모르던 7,000명을 알려 주시고요.
- 외로울 때 읽으면 좋은 성경 구절이 있나요?
- 시편 25:16, 창세기 16:13, 열왕기상 19:18, 요한복음 16:32, 시편 68:6을 곁에 두면 좋아요. 각각 외롭다고 그대로 기도한 사람, 아무도 못 보는 곳에서 나를 보시는 하나님, 내가 모르던 동료들, 혼자가 아니라고 하신 예수님, 외로운 사람에게 머무를 집을 마련하시는 하나님을 보여 줘요.
- 믿음이 좋으면 외롭지 않아야 하나요?
- 성경 인물들은 외로움을 숨기지 않았어요. 엘리야는 죽여 달라고 했고, 시편 기자는 외롭고 괴롭다고 적었고, 예수님도 겟세마네에서 함께 깨어 있어 달라고 부탁하셨어요. 외로움을 느끼는 게 믿음이 약한 증거는 아니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