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화가 난 채로 멀어졌다면
교회에 발길이 끊긴 이유가 믿음이 식어서가 아닐 때가 있어요. 하나님께 화가 난 거예요. 끝까지 안 풀린 채로 성경에 남은 노래 하나를 함께 읽어요.
교회를 그만 나간 분과 오래 이야기한 적이 있어요. 믿음이 식은 것 같다고 하셨는데, 듣다 보니 식은 게 아니더라고요. 할 말이 아직 남아 있었어요.
그분이 지나가듯 한 말이 오래 남았어요. "기도하려고 앉으면 첫 줄이 안 나와요."
왜 안 나오는지도 말해 주셨어요. 그 뒤에 나올 말이 고운 말이 아니라서요.
이럴 때 속으로 이런 생각이 들어요. "하나님께 화를 내도 되는 걸까."
그래서 말을 안 걸게 돼요. 화가 풀리면 그때 다시 하자고 미뤄요. 그런데 풀리는 날이 잘 안 와요.
순서는 이래요. 먼저 이 마음이 얼마나 흔한지 보고, 「고비를 넘기면 믿음이 더 단단해진다」는 말이 어디까지 맞는지 확인하고, 끝까지 안 풀린 채로 성경에 남은 노래 하나를 읽을게요.
나만 이렇게 느끼는 걸까요?
연구자들은 이걸 「신과의 갈등」이라고 불러요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같은 말을 해요
하나님께 화가 났다는 말은 교회에서 잘 안 나와요. 그래서 혼자만 그런 것처럼 느껴져요.
조사를 보면 그렇지 않아요. 미국 중년 3,900여 명에게 큰 어려움을 어떻게 겪는지 물었을 때,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는지 궁금해진 적이 있거나 내 잘못 때문에 벌을 주시는 것 같았다고 답한 사람이 열 명 중 셋쯤(28%)이었어요(카우든 연구팀, 2025).
「화」를 직접 물은 조사도 있어요. 1988년 미국 종합사회조사에서는 하나님께 화를 느껴 본 적이 있다고 답한 성인이 열 명 중 여섯(62%)이었어요(엑슬라인 연구팀, 2011).
두 조사는 서로 다른 것을 물었으니 두 숫자를 더하거나 비교할 수 없어요. 앞은 버림받은 느낌과 벌받는 느낌을, 뒤는 화를 물었어요. 다만 둘 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만 센 게 아니라 그 나라 사람을 폭넓게 센 조사예요. 그래서 "믿음을 버린 사람이 이만큼이다"로 읽을 숫자가 아니에요. 믿는 사람도, 멀어진 사람도 섞여 있어요.
「안 믿어져요」와 「왜 나한테요」는 달라요
이 둘을 같은 것으로 묶으면 자기 마음을 잘못 읽게 돼요.
"정말 계시는 걸까"는 의심이에요. 계시는지를 묻는 말이죠. 그런데 "왜 나한테 그러셨어요"는 계시는 걸 아니까 할 수 있는 말이에요. 없는 분에게 화가 날 수는 없으니까요.
연구자들은 뒤쪽을 「신과의 갈등」이라고 불러요. 하나님을 향한 분노, 버림받은 느낌, 벌받고 있는 것 같은 마음이 여기 들어가요(파가먼트·엑슬라인, 2021).
가르는 건 얼마나 괴로운지가 아니라 그 말을 누구에게 하는지예요. 같은 보고서는 이런 마음을 묶어 「영적 씨름」이라고 부르고 여섯 종류로 나누는데, 「신과의 갈등」이 그중 하나고 「의심」도 그중 하나예요. 그러니까 묻기만 하는 사람도 빠지지 않아요. 이름이 다를 뿐이에요. 그 보고서는 의심이 묻기를 꺼리지 않는 건강한 태도일 수 있다고도 적어 뒀어요.
그럼 이건 병인가요?
이 마음을 오래 품으면 "내가 어디 잘못된 건가" 싶어져요.
진단 기준을 만드는 사람들이 이미 구분해 뒀어요. 미국정신의학회는 1994년 진단 기준에 「종교적 또는 영적 문제」라는 항목을 넣었는데, 정신질환 목록이 아니라 「임상적 주의의 초점이 될 수 있는 그 밖의 상태」라는 묶음에 넣었어요. 믿음이 흔들려 괴로운 일을 상담에서 다룰 수는 있지만 그 자체가 질환은 아니라는 뜻이에요.
이 개념을 연구해 온 사람들은 더 분명하게 적었어요. 이런 씨름은 "병이나 미성숙의 표시가 아니고, 오히려 자라나는 과정의 자연스러운 한 부분"이라고요(파가먼트·엑슬라인, 2021).
그럼 이 화를 넘기면 믿음이 커질까요?
할 수 있는 말과 못 하는 말이 갈려요
자주 듣는 말부터 확인해 볼게요
교회에서 자주 듣는 말이 있어요. 고비를 넘기면 그만큼 단단해진다는 말이죠. 그래서 이 화도 하나의 단계처럼 들려요. 지나가기만 하면 전보다 나아진다고요.
그렇게 말하기는 어려워요. 이 개념을 세운 연구자들이 2021년에 낸 보고서에서 이렇게 적었어요. 영적 씨름이 성장으로 이어진다고 믿을 만한 이유가 있기는 하지만, "이 주제의 연구 결과는 아무리 좋게 봐도 섞여 있다"고요. 성장과 이어진 조사도 있고, 오히려 나빠진 쪽으로 나온 조사도 있고, 둘이 같이 나온 조사도 있다는 뜻이에요(파가먼트·엑슬라인, 2021).
그중 가장 길게 따라간 조사를 볼게요. 앞에서 열 명 중 셋을 센 바로 그 조사예요. 미국 중년 4천여 명을 약 9년 동안 세 번 재 봤는데, 신과의 갈등을 겪은 사람의 「개인적 성장」 점수가 나중에 더 높지 않았어요. 오히려 조금 낮게 나왔는데, 저자들은 이런 차이가 전반적으로 아주 작다고 적었어요(카우든 연구팀, 2025).
그래서 이 글은 "지나가면 더 커져요"라고 약속하지 않을게요. 실제로 재 봤을 때 그렇게 나오지 않았어요.
그럼 뭐가 받쳐지나요?
받쳐지는 건 하나예요. 이 마음은 괴로움과 같이 가요. 영적 씨름과 마음 상태를 시간 간격을 두고 잰 조사 32건을 모아 본 정리에서도 그렇게 나왔어요(보크라스 연구팀, 2022). 다만 그 32건의 추적 기간은 평균 여덟 달쯤이라, 몇 년 뒤까지 말해 주는 숫자는 아니에요.
그래서 "이 화가 당신을 망가뜨릴 거예요"도 과장이에요. 조사가 말하는 건 그만큼 세지 않아요. 이 마음을 혼자 오래 들고 있으면 힘들어진다는 거예요.
그러면 뭘 해야 하는지가 달라져요. 빨리 지나가게 만드는 게 할 일이 아니에요. 멈춰 둔 말을 꺼내는 게 할 일이에요.
성경은 이 마음을 먼저 알고 있었어요
끝까지 안 풀린 채로 노래 하나가 남아 있어요
3천 년 전에도 한 사람이 이렇게 물었어요
시편에 88편이라는 노래가 있어요. 노래 맨 앞에 "에스라인 헤만"이 썼다고 적혀 있어요.
그 노래 가운데에 이런 질문이 나와요.
여호와여 어찌하여 나의 영혼을 버리시며 어찌하여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시나이까
「여호와」와 「주」는 둘 다 하나님을 부르는 말이에요. 「어찌하여」는 왜라는 뜻이고요. 「얼굴을 내게서 숨기시나이까」는 나에게서 얼굴을 돌리셨느냐는 말이에요.
달래려고 쓴 말이 아니에요. 따지는 말이에요. 그런데 이 문장이 다듬어지지 않고 성경에 들어 있어요.
이 노래는 화가 풀려서 끝나지 않아요
시편에는 괴로움을 쏟아낸 뒤에 마음을 돌이키며 끝나는 노래가 많아요. 88편은 그렇지 않아요.
이 노래는 이렇게 시작해요.
여호와 내 구원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야로 주 앞에서 부르짖었사오니
「주야로」는 밤낮으로라는 뜻이에요.
그런데 마지막 줄은 이래요.
주는 내게서 사랑하는 자와 친구를 멀리 떠나게 하시며 내가 아는 자를 흑암에 두셨나이다
「흑암」은 아주 어두운 곳이에요.
시작할 때 헤만은 하나님을 "내 구원의 하나님"이라고 불렀어요. 끝날 때까지 답은 오지 않았어요. 그 두 줄이 한 노래 안에 같이 있어요.
읽다 보면 이상하지 않나요? 이런 노래를 왜 남겨 뒀을까요.
남겨 둔 것이 답이에요
이 노래는 해결책을 알려 주지 않아요. 대신 하나가 분명해요. 하나님께 따진 말이 지워지지 않았다는 거예요.
헤만은 자기를 이렇게 만든 분이 하나님이라고 적었어요.
주께서 나를 깊은 웅덩이와 어둡고 음침한 곳에 두셨사오며
이 문장이 그대로 남아 있어요. 그러니까 하나님께 이런 말을 한 사람이 처음부터 있었어요. 화가 풀린 사람만 말을 걸 수 있는 게 아니었어요.
헤만은 그러면서도 말을 걸기를 멈추지 않았어요.
곤란으로 말미암아 내 눈이 쇠하였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매일 주를 부르며 주를 향하여 나의 두 손을 들었나이다
「곤란으로 말미암아」는 힘든 일 때문에라는 뜻이고, 「눈이 쇠하였나이다」는 눈에 힘이 다 빠졌다는 말이에요.
답이 없는데도 매일 불렀어요. 멀어지는 대신 따지기로 했어요.
지금 뭘 해볼까요?
화가 풀리기를 기다리는 대신 해볼 수 있는 세 가지
멈춰 둔 말을 꺼내는 것부터 해 볼게요. 헤만이 한 일이 그거였어요.
멈춘 그 문장을 끝까지 적기
기도하려고 앉았다가 멈춘 적이 있다면, 어디까지 말하고 멈췄는지 떠올려 보세요. 대개 "하나님, 왜"까지예요.
그 뒤를 그대로 적어 보세요. "왜 그때 아무 말도 안 하셨어요"까지요. 다듬지 않아도 돼요. 88편도 다듬지 않은 노래예요.
언제부터였는지 날짜를 적기
막연히 "언젠가부터 멀어졌다"로 두면 이유를 찾기 어려워요. 기억나는 일 하나를 날짜까지 적어 보세요.
작은 일이어도 괜찮아요. 헤만도 어릴 적부터 그랬다고 적어 뒀어요(시편 88편 15절). 언제부터인지 적어 보면 이 마음에 이유가 있었다는 게 보여요.
화가 난 채로 부르는 이름 하나 남기기
88편의 첫 줄은 "여호와 내 구원의 하나님이여"예요. 그 말을 한 사람이 같은 노래에서 "흑암에 두셨나이다"까지 말해요.
그러니 마음이 정리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돼요. 아직 부르고 있는 이름 하나를 적어 두고, 하고 싶은 말을 그 아래에 쓰면 돼요.
이 마음이 몇 달씩 이어지고 잠이나 일에 지장이 생길 만큼 커진다면 혼자 들고 있지 마세요. 상담을 받아 보는 것도 나를 돌보는 길이고, 그 전에 믿을 만한 사람 한 명에게 말해 보는 것도요.
교회를 떠난 뒤에도 힘들 때 하나님을 먼저 찾게 되는 이유는 교회를 떠났는데도 기도하게 되는 이유에 적어 뒀어요. 사람 때문에 난 화를 꾹 참을 때 생기는 일은 화를 참기만 하면 생기는 일에서 다뤘어요.
소테리아 묵상은 짧은 성경 본문 하나와 질문 몇 개예요. 하루 3분이고, 쓴 글을 보는 사람은 나뿐이에요. 오늘 멈춰 둔 그 문장을 그대로 옮겨 보세요. 가입은 안 해도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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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인 없이 묵상해 보기자주 묻는 질문
- 하나님께 화가 나는 게 죄인가요?
- 성경은 이 질문에 설명으로 답하지 않고 기록으로 답해요. 시편 88편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께 따지는 노래인데, 그 노래가 편집되지 않고 성경에 들어 있어요. 「주께서 나를 깊은 웅덩이와 어둡고 음침한 곳에 두셨사오며」(시편 88편 6절)처럼 하나님을 주어로 세운 원망도 그대로 남아 있어요. 다만 화를 품는 것과 화를 근거로 사람을 해치는 것은 다른 이야기예요. 이 글이 말하는 건 하나님께 할 말을 하는 쪽이에요.
- 「신과의 갈등」은 어떤 상태를 말하나요?
- 연구자들이 쓰는 「영적 씨름」이라는 묶음 안에 여섯 종류가 있고, 그중 하나님을 향한 분노·버림받은 느낌·벌받는 것 같은 마음을 「신과의 갈등」이라고 불러요(파가먼트·엑슬라인, 2021). 가르는 건 얼마나 괴로운지가 아니라 그 말을 누구에게 하는지예요. 하나님께 대고 하는 말이면 이쪽이고, 하나님이 계시는지를 묻는 말이면 여섯 종류 중 「의심」이에요. 그 보고서가 「신과의 갈등」을 설명할 때 질문도 거기 들어간다고 적어 둬서, 궁금해하는 사람이 이 개념에서 빠지지는 않아요.
- 이걸 겪으면 믿음이 더 단단해진다고 들었어요.
- 그렇게 단정할 수는 없어요. 이 개념을 세운 연구자들이 2021년 보고서에서 그 주제의 연구 결과가 아무리 좋게 봐도 섞여 있다고 직접 적었어요(파가먼트·엑슬라인, 2021). 성장과 이어진 조사도 있고 오히려 나빠진 쪽으로 나온 조사도 있다는 뜻이에요. 미국 중년 4천여 명을 약 9년에 걸쳐 세 번 잰 조사에서는 신과의 갈등을 겪은 사람의 「개인적 성장」 점수가 나중에 더 높지 않았어요(카우든 연구팀, 2025). 받쳐지는 건 이 마음이 괴로움과 같이 간다는 것까지예요(보크라스 연구팀, 2022).
- 교회에 다시 나가야 풀리는 건가요?
- 이 글은 그 말을 하려는 게 아니에요. 시편 88편의 사람은 모이는 자리로 돌아간 이야기를 하지 않아요. 그는 말을 걸었어요. 「여호와여 오직 내가 주께 부르짖었사오니 아침에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이르리이다」(시편 88편 13절)가 그가 한 일이에요. 어디로 돌아갈지는 그다음 이야기고, 지금 할 수 있는 건 멈춰 둔 말을 꺼내는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