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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가치관

교회를 떠났는데도 힘들 때 하나님부터 찾게 된다면

교회는 안 나가는데 큰일이 생기면 「하나님」이 먼저 나오나요? 떠난 뒤에도 그 이름이 남는 이유를 애착 연구로 보고, 성전에 못 가던 시인과 도망친 요나의 기도를 함께 읽어요.

2026년 10월 12일·12분 읽기·SOLSUNG
수화기를 들어 올린 옛 전화기 한 대가 크림색 바탕에 놓인 손그림

얼마 전 교회를 안 나간 지 몇 년 됐다는 분과 이야기하다가 이런 말을 들었어요. 집에 큰일이 생겼을 때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 하고 말이 먼저 나왔대요. 그러고는 혼자 머쓱했다며 웃더라고요.

이런 이야기를 생각보다 자주 들어요. 주일에 교회에 가지 않고, 기도도 거의 안 하고, 성경책이 집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데, 급한 순간에 그 이름이 먼저 나와요.

그리고 그 말을 한 다음에 혼자 이런 생각을 해요. "믿음도 없으면서 급할 때만 찾는 건가."

이 글은 그 순간을 설명해 보려고 해요. 먼저 마음이 왜 그렇게 움직이는지 보고, 그다음 성경에도 같은 자리에 서 있던 사람들이 있다는 걸 볼게요.

힘들 때 왜 그 이름이 먼저 나올까요?

애착이 드러나는 순간

심리학에 애착이라는 말이 있어요. 아이가 넘어졌을 때 주위를 둘러보고 엄마에게 달려가는 그 연결을 뜻해요. 영국 정신과 의사 존 볼비(John Bowlby)가 1969년에 이 연결을 이론으로 정리했어요.

애착의 중요한 특징이 하나 있어요. 평온할 때는 잘 안 보이고, 위험할 때 드러나요. 놀라고 아프고 겁이 날 때 마음은 평소 가장 기대 본 쪽을 자동으로 찾아요. 고르기도 전에 몸이 먼저 움직여요.

리 커크패트릭(Lee Kirkpatrick)과 필립 셰이버(Phillip Shaver)는 1990년에 이 틀을 신앙에 적용해 봤어요. 믿는 사람이 하나님을 대하는 방식이 애착과 닮아 있었어요. 위기에는 피해 들어갈 곳이 되고, 평온할 때는 거기서 세상으로 나가는 출발점이 된다고 봤어요.

애착은 결심으로 끊어지지 않아요

교회에 안 나가겠다고 마음먹는 건 결정이에요. 그런데 겁이 날 때 어디를 먼저 찾는지는 결정으로 바뀌지 않아요. 급할 때 그 이름이 먼저 나왔다면, 거기 오래 기대 본 적이 있다는 표시예요.

그렇다면 그 표시는 얼마나 오래 남을까요?

떠나도 남는 게 있어요

떠난 사람에게 남는 것을 네 나라에서 센 연구

2021년에 심리학 학술지 『성격·사회심리학 저널(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에 실린 연구가 이걸 실제로 세어 봤어요. 대릴 밴 통거런(Daryl Van Tongeren) 연구팀은 미국·네덜란드·뉴질랜드·홍콩의 대표 표본을 세 번에 걸쳐 비교했어요. 처음 조사에 3,071명, 같은 설계를 미리 등록하고 다시 돌린 조사에 1,626명, 마지막 조사에는 3만 1,604명이 참여했어요.

결과는 이랬어요. 종교를 떠났다고 답한 사람들은 한 번도 종교가 없었던 사람들과도, 지금 믿는 사람들과도 달랐어요. 생각하는 방식과 몸에 익은 행동이 그 중간에 남아 있었어요. 연구팀은 이걸 종교적 잔여(religious residue)라고 불렀어요. 밴 통거런은 더 이상 믿지 않는다면서도 밥 앞에서 손이 잠깐 멈추는 사람을 예로 들었어요.

한국에도 이 자리에 선 사람이 많아요. 목회데이터연구소가 2024년 1월에 낸 「2023 한국인의 종교 현황」을 보면, 자기를 개신교인이라고 말하면서 교회에는 나가지 않는 사람이 26.6%였어요. 같은 항목이 2012년 조사에서는 10.5%였으니 11년 사이에 두 배 반이 됐어요. 20대에서는 45%, 둘 중 한 명에 가까웠어요.

교회에서는 이런 분들을 가나안 성도라고 불러요. "안 나가"를 거꾸로 읽은 말이에요.

교회 밖에서 혼자 "하나님" 하고 말해 본 사람이 생각보다 많아요.

성경에도 같은 자리에 선 사람들이 있어요

모이던 자리에 못 간 시인, 도망친 요나

예배하러 가던 자리에 못 간 사람

시편 42편을 쓴 사람은 하나님의 집, 그러니까 사람들이 예배하러 모이던 성전에 갈 수 없는 상태였어요. 왜 못 갔는지는 시에 나오지 않아요. 그 사람의 마음만 적혀 있어요.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시편 42:4

「성일」은 함께 모여 예배하던 날이에요. 전에는 그 사람들을 이끌고 앞에서 걸었는데, 이제는 그때를 떠올리면 마음이 상한다고 적었어요. 교회 다녔던 때가 떠올라 마음이 복잡해지는 분이라면 이 문장이 낯설지 않을 거예요.

같은 시의 첫 문장은 이래요.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시편 42:1). 「갈급하다」는 목이 타게 바란다는 말이에요. 모이던 자리에는 못 가는데 목은 말라 있었어요. 그 어긋난 마음을 숨기지 않고 적었어요.

성경은 이 시를 빼지 않았어요. 150편의 노래 한가운데에 그대로 뒀어요.

도망치던 사람의 기도

요나는 하나님이 가라고 한 곳과 반대 방향으로 가는 배를 탄 사람이에요. 도망 중에 바다에 던져지고 큰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요. 거기서 한 기도가 요나 2장에 남아 있어요.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더니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

요나 2:7

「피곤할 때에」는 힘이 다 빠졌을 때라는 말이에요. 요나는 아직 도망 중이었어요. 사과를 다 하고 제자리로 돌아간 다음에 기도한 게 아니에요. 바닥에서 바로 불렀어요. 그리고 성경은 그 기도가 닿았다고 적어요.

어디에 있든

시편 139편에는 이런 문장이 있어요.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시편 139:7-8

「스올」은 죽은 사람들이 있다고 여긴 곳이에요. 이 문장을 감시로 읽는 분이 있어요. 숨어도 찾아내서 따진다는 뜻으로요. 시 전체를 보면 그렇지 않아요. 시편 139편은 자기를 지으신 분을 두고 놀라는 노래예요. 하늘 끝이든 땅 아래든 내가 가는 곳에 하나님이 먼저 계신다는 말이에요.

교회 출석표에서 이름이 빠진 자리도 여기에 들어가요.

그 이름이 나왔다면 이렇게 해 봐요

취소하지 않기

"내가 왜 그랬지" 하고 머쓱해하며 지우지 않아도 돼요. 급할 때 나온 그 한마디가 가장 솔직한 기도일 때가 많아요.

한 줄로 끝내기

기도를 길게 할 필요 없어요. "힘들어요" 한 줄이면 돼요. 시편 42편을 쓴 사람도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시편 42:5) 하고 자기 마음에게 말을 걸었어요. 「낙심하다」는 기운이 꺾인다는 말이에요.

교회 문부터 떠올리지 않기

그 한마디가 나왔다는 게 당장 어디에 나가야 한다는 뜻은 아니에요. 요나의 기도도 물고기 뱃속에서 먼저 나왔어요. 지금 있는 자리에서 하면 돼요.

혼자 보는 칸에 적어 보기

말로 꺼내기 어색하면 적는 쪽이 쉬울 수 있어요. 아무도 안 보는 칸에 오늘 마음을 한 줄 적어 보세요.

버티기 어려운 날이 길게 이어진다면 혼자 견디지 말고 상담 선생님 같은 전문가와 이야기해 보세요. 마음이 많이 무너진 날에는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로 전화할 수 있어요.


어릴 때 부르던 찬양이 갑자기 떠올라 당황한 적이 있다면 10년 전 찬양은 외우는데 지난주 설교는 기억나지 않는 이유에 그 이야기를 적어 뒀어요.

기도를 어떻게 시작하면 되는지 막막하다면 기도, 어떻게 시작하면 될까요도 함께 읽어 보세요.

소테리아 묵상은 짧은 성경 본문 하나와 질문 몇 개로 끝나요. 하루 3분이면 되고, 적은 글은 혼자만 봐요. 오늘 나왔던 그 한마디를 거기 옮겨 적어 보세요. 회원가입을 하지 않아도 열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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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성도#기도#애착#시편42편#요나

자주 묻는 질문

교회를 안 나가는데 힘들 때만 기도하는 건 염치없는 일인가요?
그렇게 볼 근거는 없어요. 애착 연구는 겁이 나거나 아플 때 평소 기대 본 쪽을 먼저 찾는 걸 사람 마음의 기본 반응으로 봐요. 성경에도 도망치던 중에 바닥에서 부른 기도가 그대로 남아 있어요(요나 2:7).
가나안 성도가 무슨 뜻인가요?
자기를 개신교인이라고 말하지만 교회에는 나가지 않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에요. 「안 나가」를 거꾸로 읽은 말이에요. 목회데이터연구소가 2024년 1월에 낸 「2023 한국인의 종교 현황」에서는 개신교인 중 26.6%가 여기에 해당했어요(2012년 조사 10.5%).
기도를 다시 하려면 뭐부터 해야 하나요?
길게 쓰지 않아도 돼요. 지금 상태를 한 줄로 말하는 것부터면 충분해요. 시편 42편을 쓴 사람도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하고 자기 마음에게 말을 걸었어요. 뭘 적을지 막막하면 질문이 적힌 묵상 화면을 따라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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