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받았다는데 왜 아직도 그 일이 떠오를까요
회개했고 용서받았다고 믿는데, 그 일이 불쑥 떠올라 얼굴이 화끈해지나요? 죄책감과 수치심이 어떻게 다른지, 다윗과 바울이 지난 잘못을 어떻게 기억했는지 풀었어요.
얼마 전 한 지인이 웃으면서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몇 년 전 일인데 샤워하다가 갑자기 떠올라서 혼자 "아, 진짜" 하고 소리를 냈대요. 그때 이미 사과도 했고 기도도 여러 번 했는데 말이에요.
누구에게나 그런 일 하나쯤은 있어요. 이미 하나님 앞에 털어놓고 용서를 구한 일이에요. 그런데도 밥 먹다가, 잠들기 전에, 길을 걷다가 불쑥 떠올라요. 그리고 그때마다 얼굴이 다시 화끈해져요.
그러면 마음 한쪽에서 이런 생각이 들죠. "내 회개가 진짜가 아니었나. 하나님은 정말 용서하신 걸까."
이 글은 그 질문에 답해 보려고 해요. 먼저 기억과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고, 그다음 성경 속 사람들이 지난 잘못을 어떻게 기억했는지 볼게요.
용서받았는데 왜 또 떠오를까요?
기억은 지우개로 지워지지 않아요
먼저 알아 둘 게 있어요. 감정이 크게 흔들린 일일수록 기억에 단단히 남아요. 놀라거나 부끄럽거나 두려웠던 순간이 평범한 하루보다 또렷하게 남는다는 건 심리학에서 오래 연구된 사실이에요(제임스 맥고, 2004).
잘못을 저지른 순간은 대부분 마음이 크게 흔들린 순간이에요. 들킬까 봐 조마조마했고, 상대 표정이 굳는 걸 봤고, 집에 와서 한참 뒤척였죠. 그런 기억이 오래 남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에요.
회개는 기억을 지우는 일이 아니에요. 기억이 남아 있는 것과 하나님이 그 죄를 다시 따지시는 건 서로 다른 일이에요. 그 일이 다시 떠올랐다는 건 내 기억이 원래대로 일하고 있다는 뜻이에요.
그런데 같은 기억인데도 어떤 날은 담담하고, 어떤 날은 숨고 싶을 만큼 아파요. 그 차이는 어디서 올까요?
아픈 마음에도 두 가지가 있어요
죄책감과 수치심
심리학은 잘못한 뒤에 오는 아픈 마음을 둘로 나눠요. 죄책감과 수치심이에요. 둘 다 "괴롭다"는 느낌이라 우리는 보통 구분하지 않고 지나가요.
차이는 마음이 어디를 보고 있느냐예요.
- 죄책감은 내가 한 일을 봐요: "나는 나쁜 일을 했어." 눈이 그 행동에 가 있어요.
- 수치심은 나 자체를 봐요: "나는 나쁜 사람이야." 눈이 나라는 사람 전체에 가 있어요.
이 구분은 미국 심리학자 헬렌 블록 루이스(Helen Block Lewis)가 1971년에 처음 내놓았어요. 그 뒤를 준 탱니(June Tangney) 연구팀이 오래 이어 연구했어요. 탱니와 론다 디어링(Ronda Dearing)은 2002년 책 『수치심과 죄책감(Shame and Guilt)』에 그 결과를 정리했어요. 죄책감은 사과하고 바로잡는 쪽으로 이어지기 쉬웠고, 수치심은 숨고 피하는 쪽으로 이어지기 쉬웠어요.
이걸 알고 나면 "용서받았는데 왜 아직 아플까"에 대한 답이 하나 보여요.
회개는 내가 한 일을 하나님 앞에 내놓는 거예요. 그런데 그 일이 떠오를 때 아픈 게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는 마음이라면, 그건 이미 용서받은 행동과는 다른 자리에 남아 있는 거예요. 행동은 내려놓았는데 나에 대한 판결은 내가 계속 내리고 있는 셈이죠.
그렇다면 성경은 이 숨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다룰까요?
성경은 이 마음을 먼저 알고 있었어요
숨은 사람, 잊지 못한 사람, 다시 일어난 사람
잘못한 사람은 숨었어요
성경에서 처음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한 일은 숨는 거였어요.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하신 열매를 먹은 뒤, 아담과 아내는 하나님의 소리가 들리자 동산, 그러니까 정원의 나무 사이에 숨었어요. 그때 하나님이 먼저 아담을 부르셨어요.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탱니 연구팀이 말한 수치심의 모습 그대로예요. 그런데 이 장면에서 먼저 움직이신 쪽은 하나님이에요. 숨은 사람을 그냥 두지 않고 "네가 어디 있느냐" 하고 부르셨어요.
다윗도 잊지 못했어요
다윗 왕은 남의 아내 밧세바와 동침하고, 그 일을 덮으려고 그 남편까지 전쟁터에서 죽게 했어요. 시편 51편 머리말에는 이 시가 선지자(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 나단이 그 죄를 지적하러 찾아온 뒤에 쓴 다윗의 시라고 적혀 있어요. 거기 이런 고백이 있어요.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는 '늘 눈앞에 보인다'는 말이에요. 용서를 구하는 바로 그 기도 안에서 다윗은 그 일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고 털어놓았어요. 잊히지 않는 기억은 다윗에게도 있었어요.
그리고 성경은 이렇게 자백하는 사람에게 약속을 남겨 뒀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미쁘시고」는 '믿을 만하시고, 약속을 지키신다'는 뜻이에요. 「사하시며」는 '용서하시며'예요. 이 약속은 내 마음이 얼마나 개운한지에 달려 있지 않아요. 약속하신 분이 믿을 만한 분이라는 데 달려 있어요.
바울은 잊지 않았지만, 그 일에 묶이지 않았어요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교회 사람들을 잡아 가두던 사람이었어요. 그 일을 평생 잊지 않았어요. 고린도 교회에 쓴 편지에서도 스스로 이렇게 말해요.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고린도전서 15:9). 사도라고 불릴 자격도 없다는 말이에요. 그런데 바로 다음 절이 이어져요.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은혜는 내가 받을 자격이 없는데도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사랑이에요. 바울은 지난 잘못을 지우지 않았어요. 다만 그 기억을 꺼낼 때마다 "그래서 나는 끝이야"로 가지 않고 "그런데도 은혜로 지금의 내가 됐어"로 이어 갔어요. 기억은 그대로인데, 그 기억이 바울이 어떤 사람인지를 정하지는 못했어요.
그 일이 또 떠오르면 이렇게 해 봐요
기억을 억지로 밀어낼 필요는 없어요. 떠오른 그 순간을 어떻게 받느냐를 바꿔 보는 거예요.
문장을 반만 말하기
그 일이 떠오르면 "나는 그 일을 했다"까지만 말해 보세요. 뒤에 "그러니 나는 그런 사람이다"를 붙이지 않는 거예요. 내 눈을 행동에 두면 마음은 숨기보다 바로잡는 쪽으로 움직여요.
남은 일이 있으면 하기
아직 하지 못한 사과나 돌려줄 것이 남아 있다면, 그 기억은 할 일을 알려 주는 것일 수 있어요.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나면 같은 기억도 덜 아프게 떠올라요.
약속을 소리 내어 읽기
처음부터 다시 빌기보다 요한일서 1:9를 소리 내어 한 번 읽어 보세요. 내 기분 대신 하나님이 하신 약속을 붙잡는 연습이에요.
혼자 두지 않기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야고보서 5:16). 믿을 만한 사람 한 명에게 털어놓으면, 숨어 있던 마음이 밖으로 나와요.
그 기억 때문에 잠을 못 잘 만큼 괴로운 날이 길게 이어진다면, 혼자 버티지 말고 상담 선생님 같은 전문가와 이야기해 보세요. 그것도 숨지 않고 밖으로 나오는 한 걸음이에요.
누군가를 용서하는 게 어려워서 고민이라면 성경이 말해주는 용서 — 잘 안 될 때는요에 그 이야기를 적어 뒀어요.
넘어진 다음 어떻게 다시 일어나는지가 궁금하다면 성경이 말해주는 실패 — 넘어진 그다음도 함께 읽어 보세요.
소테리아 묵상은 마지막에 기도를 적는 칸으로 끝나요. 오늘 떠오른 그 일을 "나는 그 일을 했다"까지만 적고, 그 아래에 요한일서 1:9를 옮겨 적어 보세요. 로그인하지 않아도 돼요.
떠오른 기억을 기도로 옮기기
로그인 없이 묵상해 보기자주 묻는 질문
- 용서받았는데 그 일이 계속 떠오르면 회개가 부족한 건가요?
- 그렇게 볼 근거는 없어요. 감정이 크게 흔들린 일은 원래 기억에 오래 남아요. 다윗도 용서를 구하는 기도에서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시편 51:3)라고 고백했어요. 떠오르는 것과 용서가 취소되는 건 다른 일이에요.
- 죄책감과 수치심은 어떻게 다른가요?
- 죄책감은 「내가 나쁜 일을 했다」처럼 행동을 보고, 수치심은 「나는 나쁜 사람이다」처럼 나 자체를 봐요. 미국 심리학자 준 탱니(June Tangney) 연구팀은 죄책감이 사과하고 바로잡는 쪽으로, 수치심은 숨고 피하는 쪽으로 이어지기 쉽다고 정리했어요(탱니·디어링, 2002).
- 같은 죄를 몇 번이고 다시 회개해야 하나요?
- 요한일서 1:9는 자백하면 하나님이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해요.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처음부터 다시 빌기보다, 이미 받은 이 약속을 다시 떠올리는 쪽으로 기도해 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