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다 (ESTJ)
일하다 말고 달려 나간 사람
모임이 끝나면 다들 일어서는데, 늘 마지막까지 남아 컵을 치우는 사람이 있더라고요. 누가 부탁한 것도 아닌데 접시를 포개고 의자를 밀어 넣어요. 그 사람이 없는 날엔 이상하게 자리가 어수선하고요. 신앙 MBTI 일곱 번째 인물이 딱 그런 사람이에요. 마르다(ESTJ) — 손이 먼저 움직이는 '신뢰의 완벽한 서포터'예요.
ESTJ는 어떤 사람일까요?
ESTJ는 해야 할 일이 눈에 들어오면 몸이 먼저 움직이는 실행형이에요. 계획을 세우고 자리를 정돈해요. 사람들이 편하게 머물 수 있게 뒤를 받치고요. 마음을 말로 전하기보다 손으로 전하는 쪽이죠.
마르다가 꼭 그랬어요. 예수님이 마을에 들어오셨을 때 자기 집으로 모셔 들인 사람이 마르다였어요(누가복음 10:38). 초대는 말 한마디면 되지만, 그 뒤엔 상을 차리고 자리를 만드는 손이 필요하잖아요. 마르다는 그 손을 자원한 사람이었어요.
신앙 MBTI가 일반 MBTI와 어떻게 다른지는 이 글에 따로 정리해 두었어요.
열심히 하는 사람은 왜 서운해질까요?
그날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 발 곁에 앉아 말씀을 듣고 있었어요. 마르다는 접대하는 일로 분주했고요. 이쯤에서 이런 마음이 올라올 거예요. "나만 일하는 것 같은데, 아무도 몰라주네."
그러나 마르다는 여러 가지 접대하는 일로 분주하였다. 그래서 마르다가 예수께 와서 말하였다. "주님,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십니까? 가서 거들어 주라고 내 동생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마르다는 그 서운함을 속으로 삭이지 않았어요. 예수님께 곧장 가져가서 그대로 말했어요. 조금 무례해 보일 만큼 솔직하죠. ESTJ의 억울함은 대개 이 자리에서 나와요. 게을러서 생기는 억울함이 아니라, 열심히 했기 때문에 생기는 서운함이에요.
"마르다야, 마르다야" — 예수님의 대답은요?
그러나 주님께서는 마르다에게 대답하셨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너는 많은 일로 염려하며 들떠 있다. 그러나 주님의 일은 많지 않거나 하나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택하였다. 그러니 아무도 그것을 그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뒷부분은 조금 낯선 문장이죠. 필요한 건 몇 가지 안 되고 사실은 하나뿐이라는 뜻이에요. 예수님이 짚으신 자리는 마르다의 일솜씨가 아니었어요. 많은 일 탓에 마음이 흩어져 들떠 있는 상태를 보신 거예요.
부르시는 방식도 눈여겨볼 만해요. 성경에서 이름을 두 번 부르는 장면은 대개 다급하거나 각별한 부름이에요. 아브라함을 붙드실 때도(창세기 22:11), 어린 사무엘을 깨우실 때도(사무엘상 3:10) 그랬고요. 밀어내는 목소리보다는 가까이 오라고 붙드는 목소리에 가까워요.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상을 치우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흩어진 마음을 당신 쪽으로 돌려세우셨을 뿐이에요. 열심히 해놓고도 늘 부족한 것 같아 마음이 바쁜 사람에게 이만한 위로가 또 없어요.
그럼 마르다는 믿음이 부족했던 걸까요?
얼마 뒤 마르다의 오라버니 나사로가 세상을 떠나요. 예수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듣자 마리아는 집에 앉아 있었고, 마르다가 먼저 맞으러 나갔어요(요한복음 11:20). 슬픔 앞에서도 몸이 먼저 움직인 거예요.
그리고 무덤으로 가기 전, 예수님과 이런 대화를 나눠요.
예수께서 마르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고,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아니할 것이다. 네가 이것을 믿느냐?" 마르다가 예수께 말하였다. "예, 주님! 주님은 세상에 오실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내가 믿습니다."
이 고백이 놓인 자리가 특별해요. 요한복음은 책 끝에서 자기가 쓰인 목적을 이렇게 밝혀요. "예수가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요한복음 20:31). 복음서 한 권이 독자에게 닿게 하려던 그 고백을, 책 안에서 먼저 소리 내어 말한 사람이 상 차리느라 분주하던 마르다였어요.
그렇다고 마르다가 갑자기 초연해진 건 아니에요. 예수님이 무덤 돌을 옮기라고 하시자 "주님, 죽은 지가 나흘이나 되어서, 벌써 냄새가 납니다" 하고 말하거든요(요한복음 11:39). 부활을 믿는다고 고백한 입에서 아주 현실적인 걱정이 그대로 나와요. 믿음과 살림 걱정이 한 사람 안에 나란히 있었어요.
나사로가 살아난 뒤 베다니에서 잔치가 열렸을 때, 마르다는 어디에 있었을까요. 여전히 시중을 들고 있었어요(요한복음 12:2). 손은 그대로 바빴고, 그 바쁜 손 한가운데 주님이 계셨어요.
마르다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요?
마르다 결과 화면에는 이런 질문이 있어요.
열심히 일하는 중에 내 영혼은 예수님과 눈을 맞추고 있나요?
ESTJ에게 딱 필요한 질문이에요. 필요를 알아채고 먼저 손을 대는 성실함은 분명한 강점이에요. 다만 그 마음이 '나만 하고 있다'는 서운함으로 기울면 금세 지쳐요. 마르다도 그 자리를 지나왔고요. 일을 줄이라는 말이 아니에요. 마르다에게 필요했던 건 하나였어요. 일하는 중에 잠깐 눈을 들어 주님을 보는 것.
오늘 한 가지 해볼 수 있다면?
마르다처럼 살아보고 싶다면, 오늘 한 가지를 해보세요.
누군가의 필요를 먼저 알아채고 조용히 손을 보태보세요.
그리고 손을 움직이기 전에 딱 1분만 멈춰서 오늘 말씀 한 구절을 읽어보세요. 상을 차리던 그 손으로 가장 깊은 고백을 한 마르다의 하루가, 그 1분에서 시작돼요.
다음 편 예고
마르다의 영혼의 단짝(best match)은 지난 편 이삭 (ISFP)이라, 이번엔 그다음으로 잘 맞는 짝(good match)인 ISTP 드보라로 이어갈게요. 빈틈없이 섬긴 마르다와 전쟁터 한복판에서 냉정하게 판을 읽은 드보라가 왜 잘 통하는지, 또 다른 색깔의 신앙을 함께 풀어볼게요.
당신의 신앙 MBTI는 아직 모르시나요? 5분 테스트로 확인해보세요.
자주 묻는 질문
- 마르다가 정말 ESTJ 유형인가요?
- 성경에 MBTI가 적혀 있는 건 아니에요. 재미로 보는 해석이에요. 예수님을 집으로 모셔 들이고 접대하는 일을 도맡으며 자리를 정돈한 마르다의 모습이, 해야 할 일이 보이면 몸이 먼저 움직이는 ESTJ의 기질과 닮았다고 풀어본 거예요.
- 예수님이 마르다를 나무라신 건가요?
- 예수님이 짚으신 자리는 마르다의 일솜씨가 아니었어요. 많은 일로 마음이 흩어져 들떠 있는 상태를 보시고 "마르다야, 마르다야" 하고 이름을 두 번 부르셨어요. 실제로 나사로가 살아난 뒤 열린 잔치에서도 마르다는 여전히 시중을 들고 있었어요.
- 마르다처럼 살려면 오늘 뭘 해볼 수 있나요?
- 누군가의 필요를 먼저 알아채고 조용히 손을 보태보세요. 그리고 손을 움직이기 전에 딱 1분, 오늘 말씀 한 구절 앞에 멈춰보세요. 마르다에게 필요했던 건 일을 줄이는 게 아니라, 일하는 중에 눈을 한 번 드는 것이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