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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기초

사도신경, 한 줄씩 뜯어보기

세 번의 질문

2026년 9월 17일·17분 읽기·SOLSUNG
사도신경 한 줄씩 뜯어보기

예배 중간에 다 같이 사도신경을 외우는 순서가 있잖아요. 그럴 때 보면 다들 입은 정확히 따라가요. 저도 오래 그랬는데, 언젠가 문득 이 문장이 성경 어디에 있는지 한 번도 찾아본 적이 없다는 걸 알았어요. 이 고백이 어디서 왔고 세 덩어리가 각각 무슨 말인지 짚어 볼게요.

성경 몇 장 몇 절이냐고 물으면

먼저 말해 둘 게 있어요. 사도신경은 성경에 없어요.

주기도문은 예수님이 직접 가르쳐 주신 기도라 마태복음 6장에 그대로 실려 있어요. 그래서 장과 절을 댈 수 있죠(주기도문, 한 줄씩 뜯어보기에서 여섯 줄을 짚어 뒀어요). 사도신경은 사정이 달라요. 성경을 아무리 뒤져도 이 문장은 나오지 않아요.

"그럼 이건 누가 만든 거예요?"

오래 돌아다닌 이야기가 하나 있어요. 오순절 날 사도 열두 명이 한 사람씩 한 줄을 맡아 함께 지었다는 이야기예요. 중세 내내 널리 믿어졌고, 사도신경이 열두 항목으로 나뉘는 것도 그래서라고 설명됐어요. 그런데 이 이야기 자체가 5~6세기에 생긴 전설이에요. 사도들이 세상을 떠나고 한참 뒤에 만들어진 설명이라는 뜻이죠.

그렇다고 이름이 틀린 건 아니에요. 로마 교회의 교리 문답서는 이렇게 정리해요. 사도들이 전한 믿음을 충실히 요약한 글이라고 바르게 여겨지기 때문에 사도신경이라 부른다고요. 무엇을 담았느냐를 두고 붙인 이름인 셈이에요.

그럼 이 문장은 어디서 왔을까요.

원래는 외우는 문장이 아니었어요

사도신경의 가장 오래된 형태는 문장이 아니라 질문이었어요.

세례를 받는 사람이 물에 들어가기 직전에 질문 셋을 받았어요. 하나님 아버지를 믿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성령을 믿습니까. 세 번 묻고 세 번 답하게 했죠. 3세기 초의 「사도전승」을 비롯한 초대 교회 문헌에 그 문답이 남아 있어요. 초대 교회가 예배와 세례를 어떻게 했는지 적어 둔 오래된 기록이에요.

지금 우리가 외우는 사도신경은 그 세 질문에 대한 세 개의 대답이 자리를 잡은 거예요.

그 장면이 성경에도 한 번 나와요. 빌립이 에티오피아 관리에게 예수님 이야기를 전하며 마차를 타고 가던 길이었어요.

그들이 길을 가다가, 물이 있는 곳에 이르니, 내시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여기에 물이 있습니다. 내가 세례를 받는 데에, 무슨 거리낌이 되는 것이라도 있습니까?"

사도행전 8:36

그리고 바로 다음에 빌립이 마차를 세우고 함께 물로 내려가 세례를 줘요(사도행전 8:38).

그런데 이 두 절 사이에 한 줄이 더 붙어 있는 사본이 있어요. 인쇄기가 나오기 전까지 성경은 손으로 베껴 전해졌는데, 그렇게 남은 옛 필사본을 사본이라고 불러요. 사본마다 조금씩 다른 자리가 있어서, 새번역 성경은 그런 대목을 본문에서 빼고 아래쪽 각주로 알려 줘요. 37절이 그런 자리예요. 어떤 사본에는 빌립이 "그대가 마음을 다하여 믿으면, 세례를 받을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고, 내시가 "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습니다"라고 답하는 대목이 들어 있다고 적혀 있어요.

본문으로 확정된 절은 아니지만, 이런 각주가 남아 있다는 건 물에 들어가기 전에 믿음을 소리 내어 확인하던 순서가 아주 이른 시기부터 있었다는 뜻이에요.

질문이 왜 하필 셋이었는지는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에 있어요.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마태복음 28:19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세례를 주라고 하신 그 이름 셋이 그대로 질문 셋이 되고, 다시 사도신경의 세 덩어리가 됐어요.

여기서 한 가지가 더 풀려요. 속으로 믿으면 될 텐데 왜 소리 내어 말할까요.

사람은 마음으로 믿어서 의에 이르고, 입으로 고백해서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로마서 10:10

믿음은 마음에서 시작하지만 입에서 한 번 밖으로 나오는데, 사도신경이 "우리는"이 아니라 "나는"으로 시작하는 것도 같은 자리에서 왔어요. 세례는 한 사람씩 받는 거니까요. 다 같이 외우는 순서에 서 있어도 그 문장의 주어는 여전히 나예요.

이 세 대답이 지금의 문장으로 굳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렸어요. 2세기쯤에 「고대 로마 신경」이라 불리는 앞선 형태가 있었고, 오늘 우리가 쓰는 형태로 정리된 건 8세기 무렵이에요.

질문이 셋이었으니 덩어리도 셋이에요. 하나씩 볼게요.

첫 번째 질문 — 아버지를 믿습니까

첫 덩어리는 짧아요. 한 문장이 전부예요.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짚을 게 하나 있어요. 전능하다는 말과 천지를 만드셨다는 말이 한 호흡에 붙어 있어요. 힘이 있다는 선언에서 멈추지 않고, 그 힘으로 무엇을 하셨는지까지 한 문장 안에서 말해요. 새번역은 이 대목을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로 옮겼고요.

그래서 첫 질문은 이런 뜻이 돼요. 하늘과 땅을 만드신 그분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두 번째 질문 — 아들을 믿습니까

둘째 덩어리는 셋 중에 가장 길어요. 절반 가까이를 차지해요.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만에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여기서 "잉태"는 아이를 배는 것을, "동정녀"는 남자를 알지 못한 여인을 가리키는 옛말이에요. 예수님이 사람의 방식이 아니라 성령으로 마리아에게 오셨다는 고백이죠.

그다음에 눈에 걸리는 이름이 하나 있어요. 본디오 빌라도.

믿음을 고백하는 문장에 로마 총독의 이름이 왜 들어가 있을까요. 신앙의 인물도 아니고, 좋은 일을 한 사람도 아닌데요. 그런데 바로 그래서 값이 있어요. 이 이름은 고백을 한 지점에 못 박아요. 언제 어디서나 통하는 좋은 말이 아니라, 그 사람이 총독으로 있던 그 시절에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고 말하는 거예요. 날짜를 댈 수 있는 사건이라는 표시인 셈이죠.

그리고 이 덩어리의 순서는 사도신경이 처음 만든 게 아니에요.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에 이미 같은 순서가 있어요.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과, 무덤에 묻히셨다는 것과, 성경대로 사흗날에 살아나셨다는 것과,

고린도전서 15:3-4

죽으심, 묻히심, 사흗날에 살아나심. 사도신경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만에 … 다시 살아나시며"라고 말하는 그 순서 그대로예요. 성경에 사도신경이라는 문장은 없지만, 그 뼈대는 성경 안에 있어요.

마지막 줄은 아직 오지 않은 일을 말해요.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새번역은 "거기로부터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로 옮겼어요. 둘째 덩어리는 과거로 시작해서 미래로 끝나요.

세 번째 질문 — 성령을 믿습니까

셋째 덩어리는 성령으로 시작하는데, 문장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다섯 가지를 더 붙여요.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이 중에서 오해가 가장 자주 생기는 자리부터 볼게요. 거룩한 공회.

"공회가 가톨릭이면, 우리가 왜 그걸 믿는다고 하나요?" 이런 질문이 실제로 자주 나와요. 라틴어 원문 sanctam Ecclesiam catholicam에서 catholic은 어느 교회의 이름이 아니라 '보편'을 뜻하는 보통 말이에요. 새번역이 "거룩한 공교회"로 옮긴 것도 그 뜻을 살리려는 거고요.

그럼 무엇이 보편이라는 걸까요. 총신대 신학대학원의 서창원 교수는 이 대목을 신학자 바빙크의 말을 빌려 이렇게 풀었어요(기독일보, 2020년). "사방에 흩어져 있는 주님의 모든 교회들을 포함한 하나인 공동체"라고요.

오늘 아침 지구 반대편에서 같은 고백을 한 사람들까지 다 들어 있다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 줄에서 고백하는 건 내가 다니는 교회가 아니에요. 그 교회를 포함하면서 그보다 훨씬 큰 것이에요.

바로 뒤에 붙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은 그 큰 것의 안쪽을 말해요. 새번역은 이 옛말을 "성도의 교제"로 옮겼고요. 앞 줄이 교회가 얼마나 넓은지를 말했다면, 이 줄은 그 넓은 데서 실제로 무엇이 오가는지를 말해요.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나를 위해 기도하고, 내가 모르는 자리에서 누군가 나를 붙들어 주는 일이요.

하나 더 짚을 자리는 끝에서 두 번째예요. 몸이 다시 사는 것.

죽은 뒤에 영혼만 어딘가로 간다는 말이 아니에요. 몸이 다시 산다고 말해요. 새번역은 이 줄을 "몸의 부활"이라고 옮겼고요. 둘째 덩어리에서 예수님이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셨다고 고백한 것이 여기서 우리 쪽으로 한 번 더 돌아오는 셈이에요.

전해 받은 것을 전해 드렸습니다

앞에서 고린도전서를 한 번 인용했는데, 바울은 그 문장을 이렇게 시작해요.

나도 전해 받은 중요한 것을 여러분에게 전해 드렸습니다.

고린도전서 15:3

바울도 자기가 받은 것을 전한다고 말해요. 사도신경이 하는 일이 정확히 그거예요. 물가에서 묻고 답하던 세 마디가 다음 사람에게, 또 그다음 사람에게 건네지면서 여기까지 왔어요.

그 사이에 이름이 남은 사람은 거의 없어요. 그런데 문장은 남았고, 우리가 매주 그 문장을 말할 때 그 긴 줄의 맨 끝에 서는 거예요.

그러니 이 고백에 아직 답이 잘 안 되는 자리가 있어도 괜찮아요. 처음 이 말을 한 사람들도 다 알고 나서 말한 게 아니라, 물 앞에서 질문을 받고 아는 만큼 답했어요. 그 문장이 지금도 "우리는"이 아니라 "나는"으로 시작하는 이유예요.

이건 원래 외우는 문장이 아니었어요. 대답이었어요.


다음에 다 같이 사도신경을 말할 때, 세 덩어리를 다 붙잡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하나만 골라서 그 질문을 받는 셈 치고 대답해 보세요.

성경을 어디서부터 읽으면 좋을지 막막하시다면 성경, 어디부터 읽을까요에 순서를 정리해 뒀어요.

오늘 한 줄에 머무는 시간, 하루 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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